우리는 주권혁명으로 간다
[월간 말]황상윤의 철학에세이
6월 10일 100만이 촛불을 들었다. 87년 이후 최대 인파다. 6월 10일이 지난 지금 정부는 계속 버티기를 하고 있고, 촛불은 될 때까지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는 순간까지 촛불이 이어질지 아니면 그 전에 수그러들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국민을 굴복시키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게 될지 아니면 국민이 정부를 굴복시키고 스스로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이 역사 앞에서 수많은 언론들과 먹물들이 기염을 토하고 있다. 누구는 연구실에서, 누구는 술집에서, 누구는 광장에서 자신의 필력을 과시한다. 촛불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먹물들의 향연
조, 중, 동을 비롯한 보수 신문과 보수 먹물들은 읽어줄만한 주장을 전혀 내놓고 있지 못하다. 반면에 진보 신문들과 진보 먹물들은 신바람이 났다. 촛불이 어쩌고, 저쩌고 입담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누구는 해학과 풍자에 푹 빠져 있다. 선무방송에 대고 노래하라고 요구하고, 물대포 앞에서 온수를 뿌릴 것을 요구하는 촛불의 모습은 해학과 풍자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모습을 통해 현 시대를 읽어내려 한다. 누구는 촛불을 ‘축제’라고 규정한다. 밤새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으로 언론의 한 면을 장식한다. 그렇게 진보 먹물로서의 자신의 값어치를 높인다. 먹물이 글 한자 안 쓰고도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일 수 있는 광고판을 찾아낸 셈이다. 그러나 촛불의 축제가 ‘놀이문화’가 없어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면, 진보 먹물들은 진보 먹물로서의 자신의 소임을 망각해서는 안 될 듯 싶다.
1987, 1968 그리고 2008
누구는 ‘Again 1987’을 외친다. 조직된 운동 조직이 주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과 그럼에도 전 국민들의 자발적 저항이라는 점에서 2008년은 1987년과 닮은꼴이다. 모인 사람의 숫자조차 비슷하니 87년의 승리를 08년에도 재현해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87년이 다시 재현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87년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기간만 봐도 그렇다. 87년에는 20일간의 항쟁으로 승리를 쟁취했지만 08년에는 이미 40일을 넘어 50일로 나아가고 있다.
87년에는 전 국민의 항쟁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누구는 반쪽짜리 승리라고 폄하하지만 그래도 헌법을 국민의 요구대로 고쳤다. 그렇다면 08년의 승리는 무엇일까? 헌법은 고사하고, 법률만도 못한 장관고시 하나 철회시키고 재협상하는 것? 전 국민의 항쟁으로 쟁취해 내기에는 너무 밋밋하다. 그나마 그 승리조차 지금은 불분명하다.
87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시기였다. 독재정권은 전 국민의 항쟁 앞에서 손익계산서를 뽑아 봤을 것이다. 그리고 항복이라는 도박에 배팅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08년에는 대통령이 취임한지 100일이 갓 지났을 뿐이다. 국회는 아직 개원도 못했다. 독재정권이 손익계산서를 뽑아 봤을 때 항복해봤자 얻을 것은 별로 없고 잃을 것만 많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버티기에 들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는 조심스럽게 08년을 87년과 단절시키자고 주장한다. 08년을 항쟁으로 규정짓지 말자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발산, 중심의 다원화, 다양한 차이들 사이의 연대와 소통, 이 속에서 학습되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항쟁보다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08년은 문화혁명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해석하는 진보 먹물도 있다. 어쩌면 87년의 서울이 아니라 68년의 파리를 08년의 서울에 재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유사품인 ‘서울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가슴으로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
진보 먹물들 축에 끼지 못하는 나는 87년과 68년, 그리고 08년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촛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진보 먹물들의 소임이다.
5월 2일 처음 촛불이 켜졌을 때 청계광장에는 지도부는 고사하고, 변변한 앰프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촛불 소녀들이 주먹만한 앰프 하나를 이용하여 자유발언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그 자유발언의 역동성에 감동 받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내 눈에는 촛불을 들고 있는 수천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서 앞에서 이어지는 자유발언을 들을 수조차 없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 그들은 그냥 7시에 촛불을 들고 청계광장에 앉았다가 10시에 문화제가 끝나면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갔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길바닥에 앉아 하릴없이 3시간 동안 촛불만 들고 있는 사람들. 너무나도 지루한 그 시간을 매일같이 감내하는 사람들.
5월 28일부터 문화제가 행진으로 이어지면서 그 시간은 새벽 4시 무렵까지 길어졌고, 6월 5일에는 그 시간이 72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수십만의 사람이 촛불을 들고 노숙을 해가면서까지 거리를 지켰다. 경찰이 연행을 해도 두려움 없이 거리를 지켰고, 물대포와 곤봉세례도 온몸으로 맞으며 그 거리를 지켰다.
그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지키게 한 그 절심함은 촛불이 축제여서도, 해학과 풍자가 있어서도 아닐 것이다. 그 절실함은 진보 먹물들의 분석과 해석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 절실함은 역사의 현장에서 뜨거운 심장으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주권혁명의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
촛불 항쟁의 주제가는 ‘헌법 제 1조’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촛불을 들고 국민들은 헌법 1조를 몸으로 실현하고 있다. 5월 31일 청와대로 향하면서, 닭장차에 막히고 물대포를 맞아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똑똑히 들었다. 경찰의 선무방송을 향한 촛불의 외침을 똑똑히 들었다.
“우리가 국민이다.” “우리가 법이다.” “너희가 불법이다.”
국민주권에 관한 어떤 보고서도, 어떤 법률집도, 어떤 법이론도, 어떤 사상도 초라하게 만드는 너무나 당당한 촛불의 주권선언이다. 국회의원들이 제정한 법률이 법인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이 법이라는 선언이다. 국민의 의사를 거스르는 공권력은, 법률은 불법이라는 선언이다.
촛불은 뜨거운 심장으로 주권혁명을 시작했다. 이 주권혁명은 청소년주권선언, 여성주권선언, 교사주권선언, 노동자주권선언, 성적소수자주권선언, 장애인주권선언 등으로 이어졌을 때만이 이뤄질 수 있다. 그 길은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년 이년 안에 성취될 수 있는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촛불은 주권혁명의 시작이라는 내 소견이 너무 감상적이며 과도하다고 비판하는 진보 먹물도 있을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08년의 촛불이 주권혁명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첫걸음만을 내딛었을 뿐이다. 주권혁명의 기나긴 여정을 촛불로 시작했을 뿐이다.
먹물들의 향연
조, 중, 동을 비롯한 보수 신문과 보수 먹물들은 읽어줄만한 주장을 전혀 내놓고 있지 못하다. 반면에 진보 신문들과 진보 먹물들은 신바람이 났다. 촛불이 어쩌고, 저쩌고 입담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누구는 해학과 풍자에 푹 빠져 있다. 선무방송에 대고 노래하라고 요구하고, 물대포 앞에서 온수를 뿌릴 것을 요구하는 촛불의 모습은 해학과 풍자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모습을 통해 현 시대를 읽어내려 한다. 누구는 촛불을 ‘축제’라고 규정한다. 밤새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으로 언론의 한 면을 장식한다. 그렇게 진보 먹물로서의 자신의 값어치를 높인다. 먹물이 글 한자 안 쓰고도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일 수 있는 광고판을 찾아낸 셈이다. 그러나 촛불의 축제가 ‘놀이문화’가 없어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면, 진보 먹물들은 진보 먹물로서의 자신의 소임을 망각해서는 안 될 듯 싶다.
1987, 1968 그리고 2008
누구는 ‘Again 1987’을 외친다. 조직된 운동 조직이 주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과 그럼에도 전 국민들의 자발적 저항이라는 점에서 2008년은 1987년과 닮은꼴이다. 모인 사람의 숫자조차 비슷하니 87년의 승리를 08년에도 재현해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87년이 다시 재현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87년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기간만 봐도 그렇다. 87년에는 20일간의 항쟁으로 승리를 쟁취했지만 08년에는 이미 40일을 넘어 50일로 나아가고 있다.
87년에는 전 국민의 항쟁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누구는 반쪽짜리 승리라고 폄하하지만 그래도 헌법을 국민의 요구대로 고쳤다. 그렇다면 08년의 승리는 무엇일까? 헌법은 고사하고, 법률만도 못한 장관고시 하나 철회시키고 재협상하는 것? 전 국민의 항쟁으로 쟁취해 내기에는 너무 밋밋하다. 그나마 그 승리조차 지금은 불분명하다.
87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시기였다. 독재정권은 전 국민의 항쟁 앞에서 손익계산서를 뽑아 봤을 것이다. 그리고 항복이라는 도박에 배팅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08년에는 대통령이 취임한지 100일이 갓 지났을 뿐이다. 국회는 아직 개원도 못했다. 독재정권이 손익계산서를 뽑아 봤을 때 항복해봤자 얻을 것은 별로 없고 잃을 것만 많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버티기에 들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는 조심스럽게 08년을 87년과 단절시키자고 주장한다. 08년을 항쟁으로 규정짓지 말자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발산, 중심의 다원화, 다양한 차이들 사이의 연대와 소통, 이 속에서 학습되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항쟁보다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08년은 문화혁명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해석하는 진보 먹물도 있다. 어쩌면 87년의 서울이 아니라 68년의 파리를 08년의 서울에 재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유사품인 ‘서울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가슴으로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
진보 먹물들 축에 끼지 못하는 나는 87년과 68년, 그리고 08년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촛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진보 먹물들의 소임이다.
5월 2일 처음 촛불이 켜졌을 때 청계광장에는 지도부는 고사하고, 변변한 앰프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촛불 소녀들이 주먹만한 앰프 하나를 이용하여 자유발언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그 자유발언의 역동성에 감동 받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내 눈에는 촛불을 들고 있는 수천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서 앞에서 이어지는 자유발언을 들을 수조차 없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 그들은 그냥 7시에 촛불을 들고 청계광장에 앉았다가 10시에 문화제가 끝나면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갔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길바닥에 앉아 하릴없이 3시간 동안 촛불만 들고 있는 사람들. 너무나도 지루한 그 시간을 매일같이 감내하는 사람들.
5월 28일부터 문화제가 행진으로 이어지면서 그 시간은 새벽 4시 무렵까지 길어졌고, 6월 5일에는 그 시간이 72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수십만의 사람이 촛불을 들고 노숙을 해가면서까지 거리를 지켰다. 경찰이 연행을 해도 두려움 없이 거리를 지켰고, 물대포와 곤봉세례도 온몸으로 맞으며 그 거리를 지켰다.
그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지키게 한 그 절심함은 촛불이 축제여서도, 해학과 풍자가 있어서도 아닐 것이다. 그 절실함은 진보 먹물들의 분석과 해석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 절실함은 역사의 현장에서 뜨거운 심장으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주권혁명의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
촛불 항쟁의 주제가는 ‘헌법 제 1조’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촛불을 들고 국민들은 헌법 1조를 몸으로 실현하고 있다. 5월 31일 청와대로 향하면서, 닭장차에 막히고 물대포를 맞아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똑똑히 들었다. 경찰의 선무방송을 향한 촛불의 외침을 똑똑히 들었다.
“우리가 국민이다.” “우리가 법이다.” “너희가 불법이다.”
국민주권에 관한 어떤 보고서도, 어떤 법률집도, 어떤 법이론도, 어떤 사상도 초라하게 만드는 너무나 당당한 촛불의 주권선언이다. 국회의원들이 제정한 법률이 법인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이 법이라는 선언이다. 국민의 의사를 거스르는 공권력은, 법률은 불법이라는 선언이다.
촛불은 뜨거운 심장으로 주권혁명을 시작했다. 이 주권혁명은 청소년주권선언, 여성주권선언, 교사주권선언, 노동자주권선언, 성적소수자주권선언, 장애인주권선언 등으로 이어졌을 때만이 이뤄질 수 있다. 그 길은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년 이년 안에 성취될 수 있는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촛불은 주권혁명의 시작이라는 내 소견이 너무 감상적이며 과도하다고 비판하는 진보 먹물도 있을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08년의 촛불이 주권혁명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첫걸음만을 내딛었을 뿐이다. 주권혁명의 기나긴 여정을 촛불로 시작했을 뿐이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6-30 17:18:45
- 최종편집: 2008-07-01 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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