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승리하고 있지 않은가
[기획]역사를 바꾸고 있는 촛불
촛불은 거리에서 태어나 역사를 바꾸고 있다. 광장은 그 촛불이 다시 일으켜 세운 민주주의의 힘으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일깨우고 있다. 2008년 5월과 6월은 낙담했던 영혼에 들불이 타오르게 했다. 철근으로 무장한 권력은 이 촛불의 혁명을 이길 수 없었다.
돌아보면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진보진영은 일종의 패배주의에 빠졌다. ‘욕망의 정치’가 지배하는 현실 앞에서 무력해진 것이다. 대중은 이 욕망의 정치를 제시한 권력에 빨려 들어갔고 다른 질문들은 아예 던질 생각을 포기했다. 그런 현실에서 새로운 역사를 밀고 나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고, 진보진영은 보수 세력의 신자유주의 혁명체제가 공고히 다져지는 상황에서 어떤 전열 정비가 필요한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진보진영의 패배주의
더군다나 진보진영의 정치세력이 분열된 상태에서 변혁을 위한 새로운 진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난감해 보였다. 진보진영의 일부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상황에서 이제는 대중의 기대를 외면할 수는 없다면서 욕망의 정치를 내세운 세력의 정치적 문법에 투항했고, 한동안 전열정비를 하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열렸다. 10대 소녀들이 들기 시작한 촛불은 애초에 광우병 문제로 촉발되었으나, 그것은 단지 계기에 불과했고 이를 둘러싼 일체의 사회적 모순이 터져 나와 논란이 되는 중대한 기폭제가 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촛불을 들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동시에, 무모한 경쟁체제의 문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몰고 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의외의 돌파구와 유쾌한 반란
일상에서 직면하는 문제만큼 절실한 것이 없고, 그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출되면서 우리는 청계천 광장에서 너무나도 유쾌한 반란의 현장을 목격했다. 그것은 발랄한 자기주장과 오염되지 않은 논리가 결합된 새로운 장이었다.
아이들이 깔아 놓은 멍석 위에 어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배후가 되어 아이들을 그리로 내몬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후가 되어 어른들을 움직여 냈던 것이다. 권력은 온갖 배후설을 조작해대면서 청계천 광장에서 아이들을 쫓아내는데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현실 앞에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나왔고 청년들은 십대 동생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면서 다시 열정을 내뿜기 시작했다. 다양한 시민들이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광장에서 친구가 되었고, 처음에는 분노로 출발했던 대열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자라나면서 점점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자신들의 선택과 행동이 갖는 역사적 정당성에 대하여 물러섬이 없게 되었다.
합류의 새로운 방식, 다양한 중심
게다가 선두가 경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후미는 토론과 축제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이탈행위가 아니었다. 합류의 다양한 중심이 형성되는 새로운 진화과정이었다. 그건 모두가 전력투구해야 하는 대치상황이 벌어지면 언제든 전투태세로 전환할 수 있는 대열이었으며, 축제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면 언제든 그런 정치적 잔치의 자리로 달라질 수 있는 너무나도 유연한 정치적 유기체였다.
그러니 이를 진압의 대상으로 본 권력으로서는 어떻게도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물체가 아니었다. 이리 치면 저리 가고 저리 치면 이리 모여든다. 형체가 있으나 형체를 포착할 수 없고, 움직임이 있으나 그 움직임의 논리를 미리 예견할 수 없다. 어떤 기존의 프로그램을 적용시키는 집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장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매우 빠른 속도로 창의적 운동방식을 창출하는 이제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존재였다.
애초에 권력은 이러한 운동세력을 단지 물리적 단위로만 파악했다. 수가 적으면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소나기쯤으로 보았다. 그래서 소나기가 지나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건 엄청난 착오였다. 이는 소나기가 아니라 점점 커져가는 불가사리였다. 정의로운 역사를 향해 흥겨운 춤을 추면서 날로 자라나는 그런 불가사리였던 것이다.
광장의 무리, 불가사리가 되어가다
그래서 광화문 한 복판에 길게 세워놓은 권력의 컨테이너는 이 촛불이 불러들인 불가사리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건 전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불가사리와는 달랐다. 춤을 추고 노래하며 토론을 하면서 밤을 지새우는 광장의 무리 자체가 바로 그 불가사리가 되어갔다. 시민 민주주의의 직접 행동은 광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권력의 방어선 컨테이너 조차 자신의 전리품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권력은 자신을 지켜낸 것이 아니라 고립되었고, 점점 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어온 역사는 이 촛불 광장의 기본 환경이다. 이런 저항의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안보위기론에 시달려왔으나 이제 더는 그런 냉전의 악귀가 들어설 틈이 없었다. 또한 비폭력은 이 광장의 축제를 지켜내는 성숙한 울타리였다.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일체의 이데올로기와 물리적 폭력의 정당성은 소멸되어갔다.
이로써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란 긴 민주주의 역사에서 잠시 반짝 출현한 반동의 기간일 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의외로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민심의 정확한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기형적 권력집단의 존재는 이로써 매우 빠르게 폭로되었고 역사는 진보의 방향으로 중심을 잡아가게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얻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 반짝 보수반동 정권일 뿐
아니었다면 우리는 계속 기만당하는 대중 앞에서 정치적 무력감을 깊고도 깊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태가 벌어졌다.
시민과 운동권 또는 진보진영은 마치 서로 합류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처럼 취급되었다. 시민은 시민이고, 운동권이나 진보진영은 시민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인 것처럼 인식되었기에 촛불광장은 다중의 시민들이 주체성을 지켜내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이해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분리통치 전술이 교묘하게 작동했다.
물론 여기에는 초기 단계에서, 기존의 운동권이나 진보진영이 운동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하려 했던 어리석음도 책임이 있으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시민과 진보진영 사이에 경계선을 쳐놓고 이 둘의 결합을 저지하려 했던 권력의 논리가 보다 크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오해는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시민과 진보진영은 각기 가지고 있는 역량을 보완적으로, 그리고 창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집단지성의 힘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민과 진보진영, 하나되는 변증법적 진화
우리 모두가 분명하게 목격했듯이 권력은 지도부가 있으나 지도력을 잃었고, 시민 민주주의는 따로 지도부가 없어도 역사를 지휘하는 역량을 발휘한 까닭이 달리 있지 않았다. 시민 주체의 소박한 열망과 뚜렷한 개성,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기쁨이, 기존의 훈련된 조직 운동체와 만나면서 변증법적 진화의 단계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시민 민주주의가 진보적 민중성을 획득하는 과정인 동시에, 진보진영에는 시민 민주주의의 집단지성이 갖는 창발성이 추가되는 절차가 되었다. 이럼으로써 애초에 가졌던 대안에 대한 일말의 불안은 서서히 가시고 있다. ‘대안의 집결처’가 생겨나고 있으며 이는 시민 권력의 본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시민들이 주축이 된, 시민 민주주의가 역사의 권력으로 분명한 자리매김을 하는 놀라운 순간이다. 진정한 공화국의 성립이다.
이제 과제는 무엇인가? 이 운동이 보다 내면화되고 성찰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 도처에서 2008년 5월과 6월이 만들어낸 새로운 역사가 변화의 진정한 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반동적 보수 세력의 기회주의적 전술과 전략에 맞서서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역사를 진보시키는 진지가 구축되어가야 하는 것이다.
시민 민주주의의 직접행동 일상화돼야
이를 위해서는 이제 시민 민주주의의 직접 행동이 포괄하는 다채로운 요구와 행위가 일상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건, 단지 대의민주주의가 담아낼 수 있는 제도적 틀에만 국한될 수 없는 힘들이 솟구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편의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가 직접 민주주의의 영원한 대체물이 아니다.
따라서 시민 민주주의의 직접 행동이 보장되는 우리의 아크로폴리스가 필요하다. 그것이 존재할 때의 대의 민주주의 작동 방식과, 그것이 없는 대의 민주주의의 후진성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있다. 우리의 광장은 단지 제도정치의 한계에서만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출발은 그랬을지 모르나, 직접 민주주의로서만 풀 수 있는 과제와 기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 민주주의 민중성 획득, 진보진영 집단지성 학습
대의 민주주의의 진보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현장은 서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제도는 역동성을 잃을 수 있으며, 현장의 운동은 일상적 제도가 주는 현실적 실천력을 갖기 어렵다. 이 둘은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민중성을 기초로, 집단지성의 생동감을 자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번 터져 나온 이 직접 민주주의의 열정은 성숙한 시민 사회의 자신감과 하나가 되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져나갈 것이다. 일체의 낡은 권위주의와 일방적 소통, 그리고 반민중성은 이로써 설 자리가 없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자리에서부터 우리는 이제 한반도의 평화와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해체, 그리고 동북아시아 패권구조를 소멸시켜나가는 노력을 기울여가야 할 것이다. 무수한 토론과 풍성한 논의, 그리고 역동감 넘치는 새로운 21세기형 정치문화로 우리의 목표는 이루어져갈 것이다.
이제 그 어떤 권력도 시민 민주주의의 진보성을 후퇴시키지 못할 것이다. 역시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 그 속에 불꽃이 가득 타오르는 ‘씨알’들의 행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역사는 이렇게 새 길을 뚫어가는 자의 편이다. 우리는 이기고 있지 않은가? 결코 물러서지 말자.
돌아보면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진보진영은 일종의 패배주의에 빠졌다. ‘욕망의 정치’가 지배하는 현실 앞에서 무력해진 것이다. 대중은 이 욕망의 정치를 제시한 권력에 빨려 들어갔고 다른 질문들은 아예 던질 생각을 포기했다. 그런 현실에서 새로운 역사를 밀고 나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고, 진보진영은 보수 세력의 신자유주의 혁명체제가 공고히 다져지는 상황에서 어떤 전열 정비가 필요한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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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로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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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
진보진영의 패배주의
더군다나 진보진영의 정치세력이 분열된 상태에서 변혁을 위한 새로운 진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난감해 보였다. 진보진영의 일부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상황에서 이제는 대중의 기대를 외면할 수는 없다면서 욕망의 정치를 내세운 세력의 정치적 문법에 투항했고, 한동안 전열정비를 하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열렸다. 10대 소녀들이 들기 시작한 촛불은 애초에 광우병 문제로 촉발되었으나, 그것은 단지 계기에 불과했고 이를 둘러싼 일체의 사회적 모순이 터져 나와 논란이 되는 중대한 기폭제가 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촛불을 들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동시에, 무모한 경쟁체제의 문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몰고 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의외의 돌파구와 유쾌한 반란
일상에서 직면하는 문제만큼 절실한 것이 없고, 그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출되면서 우리는 청계천 광장에서 너무나도 유쾌한 반란의 현장을 목격했다. 그것은 발랄한 자기주장과 오염되지 않은 논리가 결합된 새로운 장이었다.
아이들이 깔아 놓은 멍석 위에 어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배후가 되어 아이들을 그리로 내몬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후가 되어 어른들을 움직여 냈던 것이다. 권력은 온갖 배후설을 조작해대면서 청계천 광장에서 아이들을 쫓아내는데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현실 앞에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나왔고 청년들은 십대 동생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면서 다시 열정을 내뿜기 시작했다. 다양한 시민들이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광장에서 친구가 되었고, 처음에는 분노로 출발했던 대열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자라나면서 점점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자신들의 선택과 행동이 갖는 역사적 정당성에 대하여 물러섬이 없게 되었다.
합류의 새로운 방식, 다양한 중심
게다가 선두가 경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후미는 토론과 축제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이탈행위가 아니었다. 합류의 다양한 중심이 형성되는 새로운 진화과정이었다. 그건 모두가 전력투구해야 하는 대치상황이 벌어지면 언제든 전투태세로 전환할 수 있는 대열이었으며, 축제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면 언제든 그런 정치적 잔치의 자리로 달라질 수 있는 너무나도 유연한 정치적 유기체였다.
그러니 이를 진압의 대상으로 본 권력으로서는 어떻게도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물체가 아니었다. 이리 치면 저리 가고 저리 치면 이리 모여든다. 형체가 있으나 형체를 포착할 수 없고, 움직임이 있으나 그 움직임의 논리를 미리 예견할 수 없다. 어떤 기존의 프로그램을 적용시키는 집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장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매우 빠른 속도로 창의적 운동방식을 창출하는 이제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존재였다.
애초에 권력은 이러한 운동세력을 단지 물리적 단위로만 파악했다. 수가 적으면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소나기쯤으로 보았다. 그래서 소나기가 지나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건 엄청난 착오였다. 이는 소나기가 아니라 점점 커져가는 불가사리였다. 정의로운 역사를 향해 흥겨운 춤을 추면서 날로 자라나는 그런 불가사리였던 것이다.
광장의 무리, 불가사리가 되어가다
그래서 광화문 한 복판에 길게 세워놓은 권력의 컨테이너는 이 촛불이 불러들인 불가사리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건 전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불가사리와는 달랐다. 춤을 추고 노래하며 토론을 하면서 밤을 지새우는 광장의 무리 자체가 바로 그 불가사리가 되어갔다. 시민 민주주의의 직접 행동은 광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권력의 방어선 컨테이너 조차 자신의 전리품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권력은 자신을 지켜낸 것이 아니라 고립되었고, 점점 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어온 역사는 이 촛불 광장의 기본 환경이다. 이런 저항의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안보위기론에 시달려왔으나 이제 더는 그런 냉전의 악귀가 들어설 틈이 없었다. 또한 비폭력은 이 광장의 축제를 지켜내는 성숙한 울타리였다.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일체의 이데올로기와 물리적 폭력의 정당성은 소멸되어갔다.
이로써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란 긴 민주주의 역사에서 잠시 반짝 출현한 반동의 기간일 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의외로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민심의 정확한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기형적 권력집단의 존재는 이로써 매우 빠르게 폭로되었고 역사는 진보의 방향으로 중심을 잡아가게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얻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 반짝 보수반동 정권일 뿐
아니었다면 우리는 계속 기만당하는 대중 앞에서 정치적 무력감을 깊고도 깊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태가 벌어졌다.
시민과 운동권 또는 진보진영은 마치 서로 합류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처럼 취급되었다. 시민은 시민이고, 운동권이나 진보진영은 시민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인 것처럼 인식되었기에 촛불광장은 다중의 시민들이 주체성을 지켜내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이해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분리통치 전술이 교묘하게 작동했다.
물론 여기에는 초기 단계에서, 기존의 운동권이나 진보진영이 운동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하려 했던 어리석음도 책임이 있으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시민과 진보진영 사이에 경계선을 쳐놓고 이 둘의 결합을 저지하려 했던 권력의 논리가 보다 크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오해는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시민과 진보진영은 각기 가지고 있는 역량을 보완적으로, 그리고 창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집단지성의 힘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민과 진보진영, 하나되는 변증법적 진화
우리 모두가 분명하게 목격했듯이 권력은 지도부가 있으나 지도력을 잃었고, 시민 민주주의는 따로 지도부가 없어도 역사를 지휘하는 역량을 발휘한 까닭이 달리 있지 않았다. 시민 주체의 소박한 열망과 뚜렷한 개성,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기쁨이, 기존의 훈련된 조직 운동체와 만나면서 변증법적 진화의 단계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시민 민주주의가 진보적 민중성을 획득하는 과정인 동시에, 진보진영에는 시민 민주주의의 집단지성이 갖는 창발성이 추가되는 절차가 되었다. 이럼으로써 애초에 가졌던 대안에 대한 일말의 불안은 서서히 가시고 있다. ‘대안의 집결처’가 생겨나고 있으며 이는 시민 권력의 본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시민들이 주축이 된, 시민 민주주의가 역사의 권력으로 분명한 자리매김을 하는 놀라운 순간이다. 진정한 공화국의 성립이다.
이제 과제는 무엇인가? 이 운동이 보다 내면화되고 성찰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 도처에서 2008년 5월과 6월이 만들어낸 새로운 역사가 변화의 진정한 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반동적 보수 세력의 기회주의적 전술과 전략에 맞서서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역사를 진보시키는 진지가 구축되어가야 하는 것이다.
시민 민주주의의 직접행동 일상화돼야
이를 위해서는 이제 시민 민주주의의 직접 행동이 포괄하는 다채로운 요구와 행위가 일상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건, 단지 대의민주주의가 담아낼 수 있는 제도적 틀에만 국한될 수 없는 힘들이 솟구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편의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가 직접 민주주의의 영원한 대체물이 아니다.
따라서 시민 민주주의의 직접 행동이 보장되는 우리의 아크로폴리스가 필요하다. 그것이 존재할 때의 대의 민주주의 작동 방식과, 그것이 없는 대의 민주주의의 후진성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있다. 우리의 광장은 단지 제도정치의 한계에서만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출발은 그랬을지 모르나, 직접 민주주의로서만 풀 수 있는 과제와 기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 민주주의 민중성 획득, 진보진영 집단지성 학습
대의 민주주의의 진보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현장은 서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제도는 역동성을 잃을 수 있으며, 현장의 운동은 일상적 제도가 주는 현실적 실천력을 갖기 어렵다. 이 둘은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민중성을 기초로, 집단지성의 생동감을 자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번 터져 나온 이 직접 민주주의의 열정은 성숙한 시민 사회의 자신감과 하나가 되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져나갈 것이다. 일체의 낡은 권위주의와 일방적 소통, 그리고 반민중성은 이로써 설 자리가 없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자리에서부터 우리는 이제 한반도의 평화와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해체, 그리고 동북아시아 패권구조를 소멸시켜나가는 노력을 기울여가야 할 것이다. 무수한 토론과 풍성한 논의, 그리고 역동감 넘치는 새로운 21세기형 정치문화로 우리의 목표는 이루어져갈 것이다.
이제 그 어떤 권력도 시민 민주주의의 진보성을 후퇴시키지 못할 것이다. 역시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 그 속에 불꽃이 가득 타오르는 ‘씨알’들의 행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역사는 이렇게 새 길을 뚫어가는 자의 편이다. 우리는 이기고 있지 않은가? 결코 물러서지 말자.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7-01 14:18:30
- 최종편집: 2008-07-01 20: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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