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야르(Baby Yar)의 학살구덩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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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야르(Baby Yar)의 학살구덩이에서 |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휴식을 위한 공원, 울창한 숲, ‘선량한 여인’으로 불리는 계곡. 길을 가며 메노라[유대교의 장식 촛대] 하나, 나무 십자가 하나, 쇠로 만들어진 십자가 몇 개를 발견한다. 소련 기념비가 있던 장소에 대해 물어보면 행인들은 모두 알지 못한다고 답한다.
사건이 일어난 지 35년이 지난 후인 1976년에 한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자신들이 직접 판 학살구덩이 앞에서 벌거벗은 채 일렬로 세워진 후 SS와 독일군의 기동타격대였던 ‘Einsatzgruppen’에게 기관총으로 학살당한 키예프의 33771명 유대인들과, 이곳에서 사망한 6만 명의 또 다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함이었다. 1961년에 시인 에브게니 에브투첸코(Evgueni Evtouchenko)는 ‘바비 야르’란 시를 통해 반유대주의를 공격했고, 시로부터 영감을 받아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1962년 자신의 교향곡 13번을 작곡했다.
관광 가이드는 “1941년 9월 28일과 29일 이곳에서 키예프와 인근의 유대인 3만3천 명을, 그리고 10월에 추가로 3천 명을 학살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집시들, 소련 전쟁포로들, 볼셰비키 비밀단원 및 빨치산들, 불법 활동으로 인해 인질이 된 사람들, OUN[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그룹] 소속의 우크라이나 애국주의자들이 닥치는 대로 총살당했다.”
우리들은 OUN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애국주의자들’이며, ‘볼셰비키 비밀단원’(새로운 컨셉인가?)의 소련 빨치산들이 불행한 인질들을 숨지게 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잘 알고 있다. 150만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의 대학살 문제를 다루고 있고, 세르게이 부코브스키(Sergueï Boukovski), 스티븐 스필버그, 빅토르 핀추크(Victor Pintchouk)가 공동 제작한 미국, 우크라이나 합작 다큐멘터리 <너 이름을 읽어봐>는 주요 희생자인 유대인들 말고도 ‘OUN 멤버’, 공산주의자들 역시 바비 야르 살육의 희생자였다고 강조했다.
‘유대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의 화해’가 한편으로 쇼아의 인정, 다른 한편으로 OUN의 통관, 점령자의 표적(그리고 점령자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공산주의자들 위상에 대한 망각을 통해 이루어지게 될까? 일부사람들이 이 민감한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안, 대학과 사립학교들로 구성된 조직인 MAUP(옆의 르포 기사 참조)는 승전기념일인 5월 9일 바비 야르 근처에서 “대학살은 유대인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내용의 전단을 배포하고 있었다.
J.-M. C.
더 읽어볼 책들
- 가엘 아이스만(Gaël Eismann)과 스테판 마르텐스(Stefan Martens)가 대표 집필, <독일의 점령과 군사 탄압(1939-1945)(Occupation et répression militaire allemande 1939-1945)>, Autrement, Paris, 2007.
- 랄프 오고렉(Ralf Ogorreck), <특별기동대. 개입그룹 및 ‘최종해결의 기원’(Les Einsatzgruppen. Les groupes d'intervention et la ‘genèse de la solution finale’)>, Calmann-Lévy, Paris, 2007.
- 일리아 에렌부르크(Ilya Ehrenbourg)와 바실리 그로스만(Vassili Grossman), <흑서(Le Livre noir)>, Actes Sud, Arles, 1999.
- 도미니크 비달(Dominique Vidal), <독일 역사가들이 쇼아를 재평가하다(Les historiens allemands relisent la Shoah)>, Complexe, Bruxelles, 2002.
- ‘총살을 통한 쇼아’에 대해서는 www.memorialdelashoah.drg 사이트를 참조할 것.
기사입력 : 2007-12-02 14:38:07
최종편집 : 2007-12-02 14:38:07
최종편집 : 2007-12-02 14: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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