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의 개혁과 친미외교
플루트 부는 사람 암렝의 마술적 연주에 홀려버린 어린이들처럼, 사르코지의 활기 넘치는 능변에 매혹된 모든 분야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술에 압도되어 버린 것 같다. 거대언론들이 대중에 대한 (사르코지의) 기만작전에 굴복함으로서 사르코지를 계속 찬양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그것은 프랑스에서 때때로 연기가 자욱한 감정의 격발과 모든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넘쳐 나는 활동력을 과시하는 대통령 앞에서 일종의 집단적 취면 상태에 빠져 들게 만든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난폭하기까지 한 요술쟁이의 진짜 성격이 정체를 스스로 드러낼 때, 사람들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것은 경제와 사회문제에 관한 첫 발표들(고소득계층에 대한 과세인 부유세, 세금보호, 상속세, 의료비면제, 잔업수당)이 그 자체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해 준다. 8월30일, 프랑스기업연맹(Medef)이 주최한 여름학교와 9월18일1) 사회문제담당 기자연맹(AJIS)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사르코지의 연설 후 그것은 보다 더 명백해졌다.
사르코지는 이렇게 규정했다. “정부의 최우선정책은 퇴직자들에 대한 특별시스템 문제를 신속히 개혁해서 처리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 이전, 더욱이 1차 세계대전 전에 생긴 이런저런 특별이익을 정당화해 주었던 상황에 대한 차이점은 이제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개혁은 현행 40년에 대해 41년 연부(年賦)로 임금노동자들의 퇴직연금 불입기간을 재연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사르코지는 또한 “건강보험 출자금에 대한 대토론”을 개시할 것을 발표했다. 왜냐하면 “의료보험은 국가가 모두 부담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거의 5000만 명이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는2) 미국과 같이, 개인의 사적 보험으로 환자가 직접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주당 35시간으로 정한 노동시간을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기 위해 앞으로 더 나갈 그의 의지를 재천명했다. 그는 또 명예퇴직시스템의 폐지를 바란다고 다시 강조했다. 그리고 2가지 고용의 알선을 거부하는 실업자들에게는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동시에 단호하게 절차와 벌칙을” 마련할 의지도 거듭 표명했다. 사회투쟁의 획득물에 반대하는 (사르코지의) 정면공격은 말하자면 전례가 없는 기발한 발상이며, 좌파세력이 “지난 50년 이래 제일 광범한 반사회적 공격”3)이라고 이를 규탄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8월27일, 프랑스주재 외국대사 협의회에서 사르코지 외교정책의 새 방향이 확인되면서 모두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중-근동문제에 관해서, 프랑스 제5공화국이 수립된 1958년 이후, 드골장군이 확정해 집행했던 바로 그러한 파리의 국제적 지위와 관련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르코지는 세계제일의 강경한 신보수주의자인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외교노선에 가담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래서 프랑스가 앞으로 직면할 것이 틀림이 없는 제일 중요한 최초의 도전이 “이슬람과 서구문명과의 충돌”이라는 이념문제에 대한 부담을 지게 되었다. 부조리를 별도로 치부하더라도 (이라크에 대한) 워싱턴의 과오들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일으킨 중동정세의 악화에 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이 분쟁종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분명히 있어야 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장관은 테헤란에 대한 전쟁은 예상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이것은 프랑스가 북대서양동맹(나토)의 군사구조 속에 통합되어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에르베 모렝 국방장관이 시사한 발언에 대한 사전준비 작업에 다름 아니다.
탁월한 전술가이며 책동의 주역인 사르코지는 최근 수주일 동안 사회부문과 외교정책분야에서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책략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했다. 사르코지에게 멀리 내다 볼 줄 아는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이다.
1) 공화국 대통령 홈페이지의 2개의 연설 전문:www.elysee.fr
2) 이에 관해서는 미카엘 무어(Michael Moore)의 기록을 보라.
3) AP통신, 2007년9월18일.
자유분방하면서도 난폭하기까지 한 요술쟁이의 진짜 성격이 정체를 스스로 드러낼 때, 사람들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것은 경제와 사회문제에 관한 첫 발표들(고소득계층에 대한 과세인 부유세, 세금보호, 상속세, 의료비면제, 잔업수당)이 그 자체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해 준다. 8월30일, 프랑스기업연맹(Medef)이 주최한 여름학교와 9월18일1) 사회문제담당 기자연맹(AJIS)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사르코지의 연설 후 그것은 보다 더 명백해졌다.
사르코지는 이렇게 규정했다. “정부의 최우선정책은 퇴직자들에 대한 특별시스템 문제를 신속히 개혁해서 처리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 이전, 더욱이 1차 세계대전 전에 생긴 이런저런 특별이익을 정당화해 주었던 상황에 대한 차이점은 이제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개혁은 현행 40년에 대해 41년 연부(年賦)로 임금노동자들의 퇴직연금 불입기간을 재연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사르코지는 또한 “건강보험 출자금에 대한 대토론”을 개시할 것을 발표했다. 왜냐하면 “의료보험은 국가가 모두 부담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거의 5000만 명이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는2) 미국과 같이, 개인의 사적 보험으로 환자가 직접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주당 35시간으로 정한 노동시간을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기 위해 앞으로 더 나갈 그의 의지를 재천명했다. 그는 또 명예퇴직시스템의 폐지를 바란다고 다시 강조했다. 그리고 2가지 고용의 알선을 거부하는 실업자들에게는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동시에 단호하게 절차와 벌칙을” 마련할 의지도 거듭 표명했다. 사회투쟁의 획득물에 반대하는 (사르코지의) 정면공격은 말하자면 전례가 없는 기발한 발상이며, 좌파세력이 “지난 50년 이래 제일 광범한 반사회적 공격”3)이라고 이를 규탄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8월27일, 프랑스주재 외국대사 협의회에서 사르코지 외교정책의 새 방향이 확인되면서 모두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중-근동문제에 관해서, 프랑스 제5공화국이 수립된 1958년 이후, 드골장군이 확정해 집행했던 바로 그러한 파리의 국제적 지위와 관련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르코지는 세계제일의 강경한 신보수주의자인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외교노선에 가담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래서 프랑스가 앞으로 직면할 것이 틀림이 없는 제일 중요한 최초의 도전이 “이슬람과 서구문명과의 충돌”이라는 이념문제에 대한 부담을 지게 되었다. 부조리를 별도로 치부하더라도 (이라크에 대한) 워싱턴의 과오들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일으킨 중동정세의 악화에 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이 분쟁종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분명히 있어야 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장관은 테헤란에 대한 전쟁은 예상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이것은 프랑스가 북대서양동맹(나토)의 군사구조 속에 통합되어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에르베 모렝 국방장관이 시사한 발언에 대한 사전준비 작업에 다름 아니다.
탁월한 전술가이며 책동의 주역인 사르코지는 최근 수주일 동안 사회부문과 외교정책분야에서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책략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했다. 사르코지에게 멀리 내다 볼 줄 아는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이다.
1) 공화국 대통령 홈페이지의 2개의 연설 전문:www.elysee.fr
2) 이에 관해서는 미카엘 무어(Michael Moore)의 기록을 보라.
3) AP통신, 2007년9월18일.
-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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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친미외교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정면으로 비판한 사설이다. 사르코지의 사회개혁과 외교정책을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종속으로 규정한 이 글은 프랑스 중도좌파의 여론을 잘 반영하고 있다. 부유세와 노동환경, 퇴직연금과 의료보험문제에서 프랑스혁명 이래 시민투쟁으로 쟁취한 ‘사회적 획득물’의 해체를 기도한 사르코지의 친기업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퇴직연금의 연부금을 늘리며 현행 국가부담 의료비를 사적보험의 개인부담으로 만드는 사르코지의 사회개혁은 자유와 평등의 조화로운 ‘복합사회’라는 ‘프랑스모델’을 허물어 역사를 퇴행시킨다는 논지다.
결국 10월19일 프랑스공공노조가 1차 총파업에 돌입해 프랑스를 암흑천지로 만들었다. 사르코지는 이날 이혼당해 이중고를 겪었지만, 양보는 없다고 선언했다. 노동총동맹(CGT) 등 전체 7개 노조가 단결해 11월14일 다시 총파업을 단행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여론악화로 파업은 자진 철회되었다. 11월 사르코지의 지지율도 4%가 급락한 55%이며 44%가 불만이었다. 노조들이 연말까지 협상결과를 보고 파업재개를 결정해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사르코지의 외교정책도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를 추락시켰다고 비판했다. 1960년 드골이 미군과 나토사령부를 파리에서 추방하면서 시작된 프랑스의 독자외교정책을 드골파인 사르코지가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르코지는 미국 주도의 나토 군사동맹에 가입하기로 했으며, 특히 핵문제로 부시와 대결하고 있는 이란문제에 부시와의 동맹을 과시했다. 쿠슈네르 외상은 이란 공격의 옵션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혀 망언으로 비난당했다. 드골파 대통령 사르코지가 2차 세계대전 후 사회보장을 최초로 구축하고 독자외교의 전통을 세운 드골장군을 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르코지는 지난 10월 하순 부시와 정상회담을 갖고 이란문제와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동맹을 과시해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사르코지의 친미 반(反)드골정책이 프랑스의 독자적 외교에 큰 상처를 입힌 것은 확실하다. 번역·해설 | 주섭일 본지 상임고문
기사입력 : 2008-03-19 18:56:21
최종편집 : 2008-03-20 08:58:55
최종편집 : 2008-03-20 08:58:55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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