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박물관까지, 경비시스템의 위험한 일반화
법 무시, 권위남용
지난 몇 년 동안, 치안불안은 정당을 막론하고 정치담론의 핵심주제중 하나가 되었다. 1978년, 프랑스에서는 외부세력의 도발로 초래되는 모든 형태의 국내 치안불안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경찰과 헌병대를 아우르는 종합치안대책 프로그램인 '비지피라트(Vigipirate)'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비지피라트 시스템은 한 번도 폐지된 적이 없었으며, 특히 9.11 테러 이후, 이번에는 테러예방을 목적으로 시대에 맞게 개정되었다. 경찰과 헌병대뿐만 아니라 군대도 참여하게 된 새로운 비지피라트 프로그램은 이전 프로그램에 비해 더욱 강화되었다. 사회전반에 걸친 불안 기조를 타고 민간기업의 공공치안임무 참여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주차장이나 대형마트 경비원들, 경비견 조련사들, 경비원들, 보안직원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감시회사들의 존재 덕분에 경찰이 등장하지 않아도 질서가 유지된다. 왜냐하면, 이들 예방 및 안전 요원들(APS)의 임무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성격을 띠지만, 민간경비시스템의 보편화와 이들이 합법성의 경계에서 부당하게 취득한 통제 권력은 공공자유에 대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시민들이 별 저항 없이 이들의 권력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 같은 위험은 더욱 심각하다.
-----------------------------------------------
프랑스 영토 전체에서나, 우리의 일상적인 환경에서나 사설경비원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대형마트, 주차장, 백화점, 사무실, 역, 공공도로, 대학, 박물관, 문화행사 및 스포츠 경기, 심지어 구립도서관까지(1), 이 ‘안전 전문가’들의 그림자와 대중을 주시하는 그들의 의심에 찬 눈초리가 등장하지 않는 장소는 한 군데도 없다. 우리는 그들의 존재에 익숙해졌다. 하라는 대로 신분증을 제시하고 가방을 열어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지시를 따른다.
2007년 프랑스 민간 경비분야의 총 임금노동자수는 15만 명으로 1998년 이후 연평균 8.5%(2005-2006년은 5.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더구나 앞으로 2015년까지 추가로 6만개의 일자리가 더 제공될 것이다.(2) 비지피라트 프로그램 전면 적용과 테러예방은 개인이 자신의 상점, 건물, 사무실에 예방 및 안전 요원(APS)들을 상주시킬 수 있는 쉬운 핑계가 되었다.(3)
그러나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으니 바로 이들 APS의 역할은 무엇보다 ‘경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절도범의 범죄의지를 꺾고, 건물이나 여러 설비의 파손을 예방하고, 대중이 이용하는 공간과 설비의 올바른 사용을 보장하는 등, APS의 1차적 기능은 경제적 기능인 것이다. APS들이 사용하는 CCTV나 경고 및 감지 시스템 같은 첨단 기술 장비는 이 같은 임무의 성공에 기여한다. 따라서 APS들이 첨단 감시수단을 사용하여 담당하는 임무는 “여러분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우리 매장에는 감시회사 요원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류의 일반적인 안내문과는 달리, 결국 건물 그 자체, 즉, 상품, 설비, 직원, 매출액의 안전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같은 기만 때문에, 사회 전체에서 강화되고 있는 사설경비원들의 존재는 대중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 이 보이지 않는 효과는 그들의 직업 종사 과정을 둘러싼 모호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설경비원들의 지위, 역할, 권력에 대한 혼동뿐만 아니라 사설경비원 종사자 수의 끝없는 증가를 정당화하고 그들이 담당하기로 되어있는 ‘안전’의 정의자체에 대한 혼동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더구나 대중매체들이 법적 관점으로 해당 주제에 접근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상황에서 이 같은 혼동은 한층 심해진다. APS라는 모호한 직업은 모든 파행적 운영의 빌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직업자체에 대한 모호함을 전파시킨다. 일상생활에서 APS들을 만나게 될 때, 개인들은 사회적 삶의 영역들을 혼동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 영역들이 분명하게 서로 구별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들은 영역을 혼동한 나머지 그럴 필요가 없는 행위를 수용하게 된다. 도처에 퍼져있는 사설경비원들의 존재는 헌법이 보장하는 주요 사회적 분리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내부규정 같은 규칙체제와 법체제의 분리,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분리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APS의 지위는 보안요원, 화재안전요원, 절도예방요원, 경비견 조련사, CCTV 기사, 순찰요원 등, 일군의 직업 카테고리 전체뿐만 아니라, 관리, 자금운반, 경호, 감시, 기술 장비 통제 등 활동 분야까지 아우른다. APS의 기능들은 관련 정도는 다르지만 어쨌든 모두 ‘안전’ 분야와 관련이 있다는 핑계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자주 겹치기까지 한다. 화재안전요원은 박물관에서 관람객 통제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백화점에서는 수상한 사람을 검문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보안요원의 임무는 “주로 안내, 출입통제, 감시순찰, 안전지침준수 감시, 긴급개입, 구조대 알림 및 안내, 사건 및 활동 보고서 작성이다.”(4)
이 같은 임무설명을 보면, 정보전달에서 예방으로, 예방에서 개입으로, 개입에서 억압으로, APS의 역할이 지각할 수 없을 만큼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시민들은 APS의 역할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검은 양복에 넥타이, 또는 전투복 바지에 편상화(編上靴), 견장, 배지, 이어폰, 워키토키로 대표되는 제복이다. 경비원 제복의 주요기능은 경비원과 개인들 간에 불균형과 권위관계, 따라서 권력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권위관계와 권력관계가 법적 관점에서 볼 때 그야말로 근거 없고, 불법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2003년 캐나다 퀘벡주 공공치안부가 발간한 민간안전 분야 백서는 이점을 수차례나 강조하고 있다.(5) “오늘날 서양 국가들에서 민간안전이 야기하는 주요문제들 중 하나는 공공안전서비스와 민간서비스의 역할중복이다.” 그러므로, “민간안전 분야 직업윤리규칙의 부재는 해당 분야의 다양한 직업종사자들에게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과 용납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커다란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의 판단에도 혼동을 유발할 수 있다. “그 같은 상황에 직면해 시민들은 고객에 대한 민간보안업체 소유주의 특정이윤보호 임무 수행과 사회전체에 대한 경찰의 공공안전보장 임무를 혼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혼동이 추가된다. 바로 상황을 이용하여, 또는 순전히 잘 몰라서 경비원들에게 잘못된 권리를 부여하는 고용주들의 혼동이다.(6) 그러나 경비원들은 경찰도 아니고 헌병대도 아니다. 경비원들은 공권력의 일부가 아니다. 매우 엄격한 규칙들이 이를 규정하고 있다. 당장 경비원 제복에 관한 규칙만 봐도 그렇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APS는 직업 활동 과정에서 특별한 제복을 착용해야한다. APS 제복은 공무원 제복, 특히 경찰, 헌병, 세관 공무원 제복과 명확히 구별되어야하며 어떤 혼동도 유발해서는 안 된다.”(7)
현실적으로 경비원 제복 규정이 준수되는 경우도 매우 드물지만, 설명 준수된다 해도, APS는 상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법의 대리인으로서, 또는 적어도 법의 대리인의 대리인으로서 나타난다. 상징적인 관점에서 경비원들의 존재가 야기하는 보이지 않는 효과는 경비원들이 개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인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인상은 각 개인의 주관적 성향과는 전혀 상관없다. 이 경우, 개인들이 갖는 인상은 의도된 것이고, 촉발된 것이며, 계산된 것이고, 유지된다. 그 같은 억지력의 창출에는 공포에 대한 모든 계산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경찰은 시민과 법 사이의 중개자이지만, 경비원은 영원히 시민과 경찰 사이의 중개자일 뿐이다. 따라서 경비원의 주요임무는 공권력에 범죄발생을 알리는 것이다. 경비원은 공권력에 속하지 않고, 공권력을 지원하며 단지 법의 적용과정에서 추가적인 고리를 구성할 뿐이다. 경비원은 감시와 통제, 특히 위험 경고의 임무를 담당하며, 긴급한 안전상의 이유로 개입하고, 규정준수를 감독하고, 때로는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장비를 갖추고, 권력관계나 권위관계를 선도한다. 이 모든 것이 대중의 판단에 의혹의 씨앗을 뿌리는데 기여한다. 경비원이 활동하는 도처에서 경비원은 법의 적용이라는 위협을 드리우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처럼 중요한 정보를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즉, APS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시민일 뿐이다. APS는 보통의 시민보다 더 많은 권력도, 특권도, 권위도 갖고 있지 않다. 안전 분야 전문가들은 시계제조업이나 음식업 전문종사자들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 ‘전문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APS는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역할이 아닌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APS는 단지 보통의 시민보다 법이나 정의에 더 가깝지도 않을뿐더러 보통의 시민이 법을 준수해야하는 것처럼 이들도 법을 준수해야한다.(8)
물론 다른 모든 시민처럼, 경비원도 형사처벌법 제73조 규정에 따라 범죄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권리는 단지 “징역형에 처해지는” 범죄나 현행범죄의 경우에만 유효하다. 이 같은 조건은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운신의 여지를 주는 것이지만 경비원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현실적으로 APS가 예방한다는 화재나 범죄 및 위반행위는 드물게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APS가 자신들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있다고 조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후에만 개입하는 소방관, 경찰, 헌병대, 119 구조대와는 달리, 경비원들은 치안불안 발생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한다. 그러니 치안불안이 오랫동안 발생하지 않는다면, 경비원들은 지루함을 해결하거나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사건들에 권위를 내세워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사실, 경비원의 일상 업무는 범죄용의자를 체포해서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비원의 업무는 법의 영역이 아니라 규칙의 영역에 위치한다. 즉, 경비원의 업무는 단지 어떤 상업적 공간의 내부규정이 그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9) 음식은 정해진 곳에서만 먹을 것, 정치적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지 말 것, 잔디에 앉지 말 것, 칼, 가위, 종이칼 등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날카로운 물건을 휴대하지 말 것 같은 규칙들이 그 예이다. 경비원의 임무는 바로 이런 규칙들을 대중이 준수하게끔 하는 것이다. 비록 그가 그 같은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경비원들은 “대중적 사적소유”라고 부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에 개입한다.(10) 물론 쇼핑몰이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경영을 개인이나 독립적인 회사가 담당하는 사적 공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에게 개방되는 공간이며, 사회적 삶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양면성을 지닌 공간들은 엄격하게 ‘기능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공공장소와 구별된다.
그렇다면 기능적인 공간이란 무엇인가? 바로 존재이유와 기능, 방문과 공간이용의 정당성이 사전에 정해지고 내부규정에 의해 기호화된 장소이며,(11) ‘휴식공간’, ‘푸드코트’, ‘놀이공간’, ‘흡연공간’ 같은 다수의 단일기능단위로 분리된 장소이다. 이 공간들 중 한곳에 있는 모든 개인은 정확하게 그가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코스가 사전에 결정되고, 모든 행위가 예상되는 그런 장소이다. 또한 기능적인 공간은 논리적 공간이다. 즉, 사물, 사람, 기호간 필수적 관계들로 구성된 닫힌 시스템에 기초한 공간으로, 각 구성요소는 이 같은 일반적인 플랜의 실현에 완전히 종속된다.
따라서 기능적인 공간은 이 플랜의 준수를 수용하는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대형마트, 주차장, 영화관, 박물관, 수영장은 모두 기능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들의 기능을 준수하지 않는, 즉, 이 공간들의 여러 내부규정을 위반하는 개인들은 비록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해도, 어쨌든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간주된다. 사실 이들 기능적인 공간은 그 자체로 경영자가 출입을 통제하고, 고객, 회원, 이용객, 소비자, 직원 같은 환영받는 인구와 아이쇼핑만 하는 사람들, 무리지어 다니는 젊은이들, 시위대 등 불청객들을 구별하려는 유혹을 담고 있다. 각 개인은 기능적인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원칙적으로 이 두 범주 중 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사소한 실수와 위반행위
대형할인마트는 광고, 전단지, 무료주차 등을 통해 소비자들을 유치하고, 소비자들에게 모든 문을-그것도 자동문으로-개방하고, 안내도우미들이 환한 미소로 소비자들을 맞이하지만, 경보장치나 감시카메라로 대표되는 소비자들에 대한 어떤 의심의 시선 없이는 그들을 나가게 두지 않는다. 사실 대형마트에서 모든 개인은 일단 잠재적인 소비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환영받는 손님이어야하지만, 동시에 대형마트에 들어오는 모든 개인은 잠재적인 범죄자이기 때문에 역시 원칙적으로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따라서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경비원들은 사전에 확립된 기능적인 틀을 넘어서는 모든 형태의 사건을 예방하고, 바로잡고, 억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 같은 사건은 상업적 건물의 경영자에게는 아무리 적은 비용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용은 단순히 매출액만을 고려한 비용이 아니며, 평판, 이미지, 이용객수까지 고려한 비용이다.
그러나 APS의 기능은 결코 예방적 기능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APS는 해당 장소에 있을 수 있는 권리에 덧붙여 내부규정 조항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권리 외에 다른 어떤 권리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또한 내부규정 위반행위를 적발한 경우에도, APS는 위반행위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어떤 권력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위반행위를 발견하고, 장부에 위반행위 양식을 기록하고, 필요한 경우 공권력에 개입요청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APS는 제복으로, 기능으로, 태도로, 법과 규칙의 이중영역에서 활동하며, 사소한 실수도 위반행위로 간주하고, 아주 작은 사건도 범죄행위로 간주한다. 심지어 ‘규칙을 어긴’ 개인 자신도 APS가 정말로 법의 대리인인지 그렇지 않은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치 경찰로부터 경고를 받듯이 APS의 비난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해당 규칙에 대해 ‘비정상’인 행위가 아니라 법을 위반한 ‘불법’행위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 같은 법과 규칙의 혼동은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비공식적 권위관계를 공식적 권위관계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혼동의 원인은 내부규정자체의 존재 때문이라기보다 해당 건물의 기능과 상관없는 외부 전문가들에게 내부규정 적용을 위임한 결정에 기인한다.
현재까지는 사서, 매장책임자, 창구직원 같은 건물 직원들이 규칙 적용 임무를 담당했으며, 비협조적인 개인들을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따라서 특징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살아있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제재했다. 반면에 오늘날 하청회사들이 고용하는 APS들은 내부규정을 에누리 없이 엄격하게 적용하고, 안내서를 따르고, 상부에 보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경위서를 제출해야한다.
권력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유연성이 아직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은 수학적, 기계적 질서가 지배한다. 즉, 동일한 원인은 동일한 효과를 낳아야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법 체제와 규칙 체제 간 이 같은 혼동의 유지가 어떤 보이지 않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법과 규칙의 혼동은 이른바 ‘규율’사회의 특징적인 혼동이다. 사실 규율사회는 “처벌권력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만들고, 형벌에 대한 관용의 기준을 낮춘다. 규율사회는 터무니없는 처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규율사회가 전개되는 합법적인 법의 영역과 법외적인 규율이라는 두 범주의 혼동이 발생하기 때문이다.”(12)
공공장소에서 감시원들의 존재는 감옥의 논리로 사회적 영역 전체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감시원들이 적용하는 결정과 제재 및 규율기제를 법으로 보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렇게 “감옥의 연속성과 감옥형태의 보급은 규율권력의 합법화나, 정당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 규율권력은 과잉이나 남용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을 교묘하게 피한다. 또한 감옥의 일반화는 사회구조 전체에서 작동하고 바로잡는 기술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혼합함으로써 처벌이 당연시되고 수용될 수 있는 수준을 낮춘다.”(13)
경비원들은 규칙 체제 확대의 일반화에 기여한다. 규칙 체제는 개인의 자유의 행사를 저해한다. 규칙 체제의 존재로, 개인들은 더 쉽게 권위관계를 받아들이고, 권력 앞에 더욱 온순한 태도를 보이며, 자신들의 행위를 규율에 맞추고, 모든 형태의 엉뚱함이나 괴상함을 억제한다. 그러나 규칙 체제는 동시에 모든 형태의 정치적 의사표시나 시민들의 모든 불복종행위에 대비하는 것이다.
소위 그 자체로 정당화가 필요한 ‘안보’라는 명목으로, ‘대중적 사적소유’의 경영자들은 그곳을 방문하는 개인들에게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의 준수를 요구하며, ‘전문가’를 배치해 규정준수 여부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한다. 이 지점에서 뭔가 ‘파시즘’에 대해 말해야한다면, 아마 ‘파시즘’보다는 ‘미시파시즘’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14)
적용양식을 규정하는 전체적인 플랜도 없고, 선도자가 되어야할 특별한 주체도 없고, 일반적인 규칙을 명시할 기초텍스트도 없고, 음모도 없다. 그저 서로 합쳐지고, 일치하고, 강화되어, 마침내 확산된 권위체제를 구축하는 특별한 의지들이 있을 뿐이다. 권위체제의 중심은 도처에 있으며,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체제는 체제전복을 바라는 사람에게 거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1) 렌느의 샹리브르 구립도서관.
(2) 프랑스 보안회사조합(SNES) 홈페이지, www.e-snes.org
(3) 예방 및 안전 요원(APS)이라는 명칭은 민간안전 부문 단체협약을 통해 인정되고 있다.
(4) SNES 홈페이지 참조.
(5) 퀘벡 공공치안부, 백서:국내치안과 민간안전, 2003년 12월, www.canasa.org/newwebsite/french/content_pages/qc_reform/livre_blanc_secprive_12-03.pdf
(6) 예로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에서는 경비원들이 때로 철도경찰의 업무도 담당해야한다. 폴 스틸라티 & 올리비에 시랑, 「SNCF의 관리업무 하청」, CQFD, n? 14, 마르세이유, 2004년 7월 참조.
(7) 민간안전 활동에 관한 1983년 7월 12일 n? 83-629 법, 10조.
(8) 1983년 7월 12일 법 제 13조.
(9) SNES 홈페이지의 ‘안전과 감시의 주요직업’ 소개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해당 장소의 안전지침준수’, ‘정해진 지침의 적용을 확인하는 권리’, ‘규율준수 감독’
(10) 클리포드 쉐어링 & 필립 스테닝, 「‘대중적 사적소유’」, 정치사회적 문제들, <라도큐멩타시옹 프랑세즈>, 파리, 2006년 11월.
(11) 내부규정 확립은 일반적으로 최소 20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 기관, 관청, 단체에서 의무사항이다.
(12)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갈리마르, 파리, 1975년, p.354-355.
(13) 위의 책
(14) 질 들뢰즈, 「광인들의 두 체제」, 에디시옹 드 미뉘, 파리, 2003년, p.125. “구파시즘은 많은 국가들에서 여전히 존재하며 강력하지만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또 다른 파시즘을 각오해야한다. 네오파시즘이 출현한 것이다. 구파시즘은 네오파시즘에 비하면 민속적인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네오파시즘은 전쟁경제나 정치가 아니라 안보를 위한, 다시 말해, 전쟁만큼이나 끔찍한 ‘평화’의 관리를 위한 세계적인 합의이다.”
-----------------------------------------------
프랑스 영토 전체에서나, 우리의 일상적인 환경에서나 사설경비원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대형마트, 주차장, 백화점, 사무실, 역, 공공도로, 대학, 박물관, 문화행사 및 스포츠 경기, 심지어 구립도서관까지(1), 이 ‘안전 전문가’들의 그림자와 대중을 주시하는 그들의 의심에 찬 눈초리가 등장하지 않는 장소는 한 군데도 없다. 우리는 그들의 존재에 익숙해졌다. 하라는 대로 신분증을 제시하고 가방을 열어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지시를 따른다.
2007년 프랑스 민간 경비분야의 총 임금노동자수는 15만 명으로 1998년 이후 연평균 8.5%(2005-2006년은 5.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더구나 앞으로 2015년까지 추가로 6만개의 일자리가 더 제공될 것이다.(2) 비지피라트 프로그램 전면 적용과 테러예방은 개인이 자신의 상점, 건물, 사무실에 예방 및 안전 요원(APS)들을 상주시킬 수 있는 쉬운 핑계가 되었다.(3)
그러나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으니 바로 이들 APS의 역할은 무엇보다 ‘경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절도범의 범죄의지를 꺾고, 건물이나 여러 설비의 파손을 예방하고, 대중이 이용하는 공간과 설비의 올바른 사용을 보장하는 등, APS의 1차적 기능은 경제적 기능인 것이다. APS들이 사용하는 CCTV나 경고 및 감지 시스템 같은 첨단 기술 장비는 이 같은 임무의 성공에 기여한다. 따라서 APS들이 첨단 감시수단을 사용하여 담당하는 임무는 “여러분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우리 매장에는 감시회사 요원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류의 일반적인 안내문과는 달리, 결국 건물 그 자체, 즉, 상품, 설비, 직원, 매출액의 안전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같은 기만 때문에, 사회 전체에서 강화되고 있는 사설경비원들의 존재는 대중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 이 보이지 않는 효과는 그들의 직업 종사 과정을 둘러싼 모호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설경비원들의 지위, 역할, 권력에 대한 혼동뿐만 아니라 사설경비원 종사자 수의 끝없는 증가를 정당화하고 그들이 담당하기로 되어있는 ‘안전’의 정의자체에 대한 혼동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더구나 대중매체들이 법적 관점으로 해당 주제에 접근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상황에서 이 같은 혼동은 한층 심해진다. APS라는 모호한 직업은 모든 파행적 운영의 빌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직업자체에 대한 모호함을 전파시킨다. 일상생활에서 APS들을 만나게 될 때, 개인들은 사회적 삶의 영역들을 혼동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 영역들이 분명하게 서로 구별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들은 영역을 혼동한 나머지 그럴 필요가 없는 행위를 수용하게 된다. 도처에 퍼져있는 사설경비원들의 존재는 헌법이 보장하는 주요 사회적 분리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내부규정 같은 규칙체제와 법체제의 분리,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분리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APS의 지위는 보안요원, 화재안전요원, 절도예방요원, 경비견 조련사, CCTV 기사, 순찰요원 등, 일군의 직업 카테고리 전체뿐만 아니라, 관리, 자금운반, 경호, 감시, 기술 장비 통제 등 활동 분야까지 아우른다. APS의 기능들은 관련 정도는 다르지만 어쨌든 모두 ‘안전’ 분야와 관련이 있다는 핑계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자주 겹치기까지 한다. 화재안전요원은 박물관에서 관람객 통제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백화점에서는 수상한 사람을 검문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보안요원의 임무는 “주로 안내, 출입통제, 감시순찰, 안전지침준수 감시, 긴급개입, 구조대 알림 및 안내, 사건 및 활동 보고서 작성이다.”(4)
이 같은 임무설명을 보면, 정보전달에서 예방으로, 예방에서 개입으로, 개입에서 억압으로, APS의 역할이 지각할 수 없을 만큼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시민들은 APS의 역할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검은 양복에 넥타이, 또는 전투복 바지에 편상화(編上靴), 견장, 배지, 이어폰, 워키토키로 대표되는 제복이다. 경비원 제복의 주요기능은 경비원과 개인들 간에 불균형과 권위관계, 따라서 권력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권위관계와 권력관계가 법적 관점에서 볼 때 그야말로 근거 없고, 불법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2003년 캐나다 퀘벡주 공공치안부가 발간한 민간안전 분야 백서는 이점을 수차례나 강조하고 있다.(5) “오늘날 서양 국가들에서 민간안전이 야기하는 주요문제들 중 하나는 공공안전서비스와 민간서비스의 역할중복이다.” 그러므로, “민간안전 분야 직업윤리규칙의 부재는 해당 분야의 다양한 직업종사자들에게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과 용납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커다란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의 판단에도 혼동을 유발할 수 있다. “그 같은 상황에 직면해 시민들은 고객에 대한 민간보안업체 소유주의 특정이윤보호 임무 수행과 사회전체에 대한 경찰의 공공안전보장 임무를 혼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혼동이 추가된다. 바로 상황을 이용하여, 또는 순전히 잘 몰라서 경비원들에게 잘못된 권리를 부여하는 고용주들의 혼동이다.(6) 그러나 경비원들은 경찰도 아니고 헌병대도 아니다. 경비원들은 공권력의 일부가 아니다. 매우 엄격한 규칙들이 이를 규정하고 있다. 당장 경비원 제복에 관한 규칙만 봐도 그렇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APS는 직업 활동 과정에서 특별한 제복을 착용해야한다. APS 제복은 공무원 제복, 특히 경찰, 헌병, 세관 공무원 제복과 명확히 구별되어야하며 어떤 혼동도 유발해서는 안 된다.”(7)
현실적으로 경비원 제복 규정이 준수되는 경우도 매우 드물지만, 설명 준수된다 해도, APS는 상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법의 대리인으로서, 또는 적어도 법의 대리인의 대리인으로서 나타난다. 상징적인 관점에서 경비원들의 존재가 야기하는 보이지 않는 효과는 경비원들이 개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인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인상은 각 개인의 주관적 성향과는 전혀 상관없다. 이 경우, 개인들이 갖는 인상은 의도된 것이고, 촉발된 것이며, 계산된 것이고, 유지된다. 그 같은 억지력의 창출에는 공포에 대한 모든 계산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경찰은 시민과 법 사이의 중개자이지만, 경비원은 영원히 시민과 경찰 사이의 중개자일 뿐이다. 따라서 경비원의 주요임무는 공권력에 범죄발생을 알리는 것이다. 경비원은 공권력에 속하지 않고, 공권력을 지원하며 단지 법의 적용과정에서 추가적인 고리를 구성할 뿐이다. 경비원은 감시와 통제, 특히 위험 경고의 임무를 담당하며, 긴급한 안전상의 이유로 개입하고, 규정준수를 감독하고, 때로는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장비를 갖추고, 권력관계나 권위관계를 선도한다. 이 모든 것이 대중의 판단에 의혹의 씨앗을 뿌리는데 기여한다. 경비원이 활동하는 도처에서 경비원은 법의 적용이라는 위협을 드리우고 있다.
![]() |
법 무시, 권위남용 |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그런데도 언론이 이처럼 중요한 정보를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즉, APS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시민일 뿐이다. APS는 보통의 시민보다 더 많은 권력도, 특권도, 권위도 갖고 있지 않다. 안전 분야 전문가들은 시계제조업이나 음식업 전문종사자들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 ‘전문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APS는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역할이 아닌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APS는 단지 보통의 시민보다 법이나 정의에 더 가깝지도 않을뿐더러 보통의 시민이 법을 준수해야하는 것처럼 이들도 법을 준수해야한다.(8)
물론 다른 모든 시민처럼, 경비원도 형사처벌법 제73조 규정에 따라 범죄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권리는 단지 “징역형에 처해지는” 범죄나 현행범죄의 경우에만 유효하다. 이 같은 조건은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운신의 여지를 주는 것이지만 경비원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현실적으로 APS가 예방한다는 화재나 범죄 및 위반행위는 드물게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APS가 자신들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있다고 조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후에만 개입하는 소방관, 경찰, 헌병대, 119 구조대와는 달리, 경비원들은 치안불안 발생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한다. 그러니 치안불안이 오랫동안 발생하지 않는다면, 경비원들은 지루함을 해결하거나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사건들에 권위를 내세워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사실, 경비원의 일상 업무는 범죄용의자를 체포해서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비원의 업무는 법의 영역이 아니라 규칙의 영역에 위치한다. 즉, 경비원의 업무는 단지 어떤 상업적 공간의 내부규정이 그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9) 음식은 정해진 곳에서만 먹을 것, 정치적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지 말 것, 잔디에 앉지 말 것, 칼, 가위, 종이칼 등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날카로운 물건을 휴대하지 말 것 같은 규칙들이 그 예이다. 경비원의 임무는 바로 이런 규칙들을 대중이 준수하게끔 하는 것이다. 비록 그가 그 같은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경비원들은 “대중적 사적소유”라고 부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에 개입한다.(10) 물론 쇼핑몰이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경영을 개인이나 독립적인 회사가 담당하는 사적 공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에게 개방되는 공간이며, 사회적 삶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양면성을 지닌 공간들은 엄격하게 ‘기능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공공장소와 구별된다.
그렇다면 기능적인 공간이란 무엇인가? 바로 존재이유와 기능, 방문과 공간이용의 정당성이 사전에 정해지고 내부규정에 의해 기호화된 장소이며,(11) ‘휴식공간’, ‘푸드코트’, ‘놀이공간’, ‘흡연공간’ 같은 다수의 단일기능단위로 분리된 장소이다. 이 공간들 중 한곳에 있는 모든 개인은 정확하게 그가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코스가 사전에 결정되고, 모든 행위가 예상되는 그런 장소이다. 또한 기능적인 공간은 논리적 공간이다. 즉, 사물, 사람, 기호간 필수적 관계들로 구성된 닫힌 시스템에 기초한 공간으로, 각 구성요소는 이 같은 일반적인 플랜의 실현에 완전히 종속된다.
따라서 기능적인 공간은 이 플랜의 준수를 수용하는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대형마트, 주차장, 영화관, 박물관, 수영장은 모두 기능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들의 기능을 준수하지 않는, 즉, 이 공간들의 여러 내부규정을 위반하는 개인들은 비록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해도, 어쨌든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간주된다. 사실 이들 기능적인 공간은 그 자체로 경영자가 출입을 통제하고, 고객, 회원, 이용객, 소비자, 직원 같은 환영받는 인구와 아이쇼핑만 하는 사람들, 무리지어 다니는 젊은이들, 시위대 등 불청객들을 구별하려는 유혹을 담고 있다. 각 개인은 기능적인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원칙적으로 이 두 범주 중 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사소한 실수와 위반행위
대형할인마트는 광고, 전단지, 무료주차 등을 통해 소비자들을 유치하고, 소비자들에게 모든 문을-그것도 자동문으로-개방하고, 안내도우미들이 환한 미소로 소비자들을 맞이하지만, 경보장치나 감시카메라로 대표되는 소비자들에 대한 어떤 의심의 시선 없이는 그들을 나가게 두지 않는다. 사실 대형마트에서 모든 개인은 일단 잠재적인 소비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환영받는 손님이어야하지만, 동시에 대형마트에 들어오는 모든 개인은 잠재적인 범죄자이기 때문에 역시 원칙적으로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따라서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경비원들은 사전에 확립된 기능적인 틀을 넘어서는 모든 형태의 사건을 예방하고, 바로잡고, 억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 같은 사건은 상업적 건물의 경영자에게는 아무리 적은 비용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용은 단순히 매출액만을 고려한 비용이 아니며, 평판, 이미지, 이용객수까지 고려한 비용이다.
그러나 APS의 기능은 결코 예방적 기능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APS는 해당 장소에 있을 수 있는 권리에 덧붙여 내부규정 조항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권리 외에 다른 어떤 권리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또한 내부규정 위반행위를 적발한 경우에도, APS는 위반행위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어떤 권력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위반행위를 발견하고, 장부에 위반행위 양식을 기록하고, 필요한 경우 공권력에 개입요청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APS는 제복으로, 기능으로, 태도로, 법과 규칙의 이중영역에서 활동하며, 사소한 실수도 위반행위로 간주하고, 아주 작은 사건도 범죄행위로 간주한다. 심지어 ‘규칙을 어긴’ 개인 자신도 APS가 정말로 법의 대리인인지 그렇지 않은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치 경찰로부터 경고를 받듯이 APS의 비난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해당 규칙에 대해 ‘비정상’인 행위가 아니라 법을 위반한 ‘불법’행위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 같은 법과 규칙의 혼동은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비공식적 권위관계를 공식적 권위관계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혼동의 원인은 내부규정자체의 존재 때문이라기보다 해당 건물의 기능과 상관없는 외부 전문가들에게 내부규정 적용을 위임한 결정에 기인한다.
현재까지는 사서, 매장책임자, 창구직원 같은 건물 직원들이 규칙 적용 임무를 담당했으며, 비협조적인 개인들을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따라서 특징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살아있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제재했다. 반면에 오늘날 하청회사들이 고용하는 APS들은 내부규정을 에누리 없이 엄격하게 적용하고, 안내서를 따르고, 상부에 보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경위서를 제출해야한다.
권력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유연성이 아직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은 수학적, 기계적 질서가 지배한다. 즉, 동일한 원인은 동일한 효과를 낳아야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법 체제와 규칙 체제 간 이 같은 혼동의 유지가 어떤 보이지 않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법과 규칙의 혼동은 이른바 ‘규율’사회의 특징적인 혼동이다. 사실 규율사회는 “처벌권력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만들고, 형벌에 대한 관용의 기준을 낮춘다. 규율사회는 터무니없는 처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규율사회가 전개되는 합법적인 법의 영역과 법외적인 규율이라는 두 범주의 혼동이 발생하기 때문이다.”(12)
공공장소에서 감시원들의 존재는 감옥의 논리로 사회적 영역 전체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감시원들이 적용하는 결정과 제재 및 규율기제를 법으로 보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렇게 “감옥의 연속성과 감옥형태의 보급은 규율권력의 합법화나, 정당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 규율권력은 과잉이나 남용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을 교묘하게 피한다. 또한 감옥의 일반화는 사회구조 전체에서 작동하고 바로잡는 기술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혼합함으로써 처벌이 당연시되고 수용될 수 있는 수준을 낮춘다.”(13)
경비원들은 규칙 체제 확대의 일반화에 기여한다. 규칙 체제는 개인의 자유의 행사를 저해한다. 규칙 체제의 존재로, 개인들은 더 쉽게 권위관계를 받아들이고, 권력 앞에 더욱 온순한 태도를 보이며, 자신들의 행위를 규율에 맞추고, 모든 형태의 엉뚱함이나 괴상함을 억제한다. 그러나 규칙 체제는 동시에 모든 형태의 정치적 의사표시나 시민들의 모든 불복종행위에 대비하는 것이다.
소위 그 자체로 정당화가 필요한 ‘안보’라는 명목으로, ‘대중적 사적소유’의 경영자들은 그곳을 방문하는 개인들에게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의 준수를 요구하며, ‘전문가’를 배치해 규정준수 여부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한다. 이 지점에서 뭔가 ‘파시즘’에 대해 말해야한다면, 아마 ‘파시즘’보다는 ‘미시파시즘’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14)
적용양식을 규정하는 전체적인 플랜도 없고, 선도자가 되어야할 특별한 주체도 없고, 일반적인 규칙을 명시할 기초텍스트도 없고, 음모도 없다. 그저 서로 합쳐지고, 일치하고, 강화되어, 마침내 확산된 권위체제를 구축하는 특별한 의지들이 있을 뿐이다. 권위체제의 중심은 도처에 있으며,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체제는 체제전복을 바라는 사람에게 거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1) 렌느의 샹리브르 구립도서관.
(2) 프랑스 보안회사조합(SNES) 홈페이지, www.e-snes.org
(3) 예방 및 안전 요원(APS)이라는 명칭은 민간안전 부문 단체협약을 통해 인정되고 있다.
(4) SNES 홈페이지 참조.
(5) 퀘벡 공공치안부, 백서:국내치안과 민간안전, 2003년 12월, www.canasa.org/newwebsite/french/content_pages/qc_reform/livre_blanc_secprive_12-03.pdf
(6) 예로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에서는 경비원들이 때로 철도경찰의 업무도 담당해야한다. 폴 스틸라티 & 올리비에 시랑, 「SNCF의 관리업무 하청」, CQFD, n? 14, 마르세이유, 2004년 7월 참조.
(7) 민간안전 활동에 관한 1983년 7월 12일 n? 83-629 법, 10조.
(8) 1983년 7월 12일 법 제 13조.
(9) SNES 홈페이지의 ‘안전과 감시의 주요직업’ 소개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해당 장소의 안전지침준수’, ‘정해진 지침의 적용을 확인하는 권리’, ‘규율준수 감독’
(10) 클리포드 쉐어링 & 필립 스테닝, 「‘대중적 사적소유’」, 정치사회적 문제들, <라도큐멩타시옹 프랑세즈>, 파리, 2006년 11월.
(11) 내부규정 확립은 일반적으로 최소 20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 기관, 관청, 단체에서 의무사항이다.
(12)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갈리마르, 파리, 1975년, p.354-355.
(13) 위의 책
(14) 질 들뢰즈, 「광인들의 두 체제」, 에디시옹 드 미뉘, 파리, 2003년, p.125. “구파시즘은 많은 국가들에서 여전히 존재하며 강력하지만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또 다른 파시즘을 각오해야한다. 네오파시즘이 출현한 것이다. 구파시즘은 네오파시즘에 비하면 민속적인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네오파시즘은 전쟁경제나 정치가 아니라 안보를 위한, 다시 말해, 전쟁만큼이나 끔찍한 ‘평화’의 관리를 위한 세계적인 합의이다.”
- 일반화된 의심
-
프랑스에서 비지피라트 프로그램 도입(1)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계=안전’이라는 방정식이 각인되었다. 또한 ‘경계’가 모든 국민의 일이 되었다. “비지피라트를 통해, 직업이나 책임수준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은 테러의 위협에 집단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2)
그런데 사실 경계는 그 대상이 없다는 이상한 특징을 갖는다. 테러위협은 그야말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당연히 경계가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시’가 수감자, 학생, 창고, ‘깡패국가’ 같은 명확한 목표에 대해 장소와 시간적으로 한정되어 진행되는 반면, 경계는 공간에서 무한대로 흩어지는 지속적인 주의이다. 사실 ‘감시하다’라는 동사는 타동사이다. 대상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위협은 전적으로 불확정적이고, 모호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경계도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비지피라트 프로그램은 일상적인 행정, 경제, 사회 활동을 이유 없이 교란시키지 않고도 각자의 경계태세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3) 감시는 하나의 활동이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있는 반면에, 경계는 개인의 항구적인 자세가 되어야한다. 이제 경계가 개인이 세상과 맺는 새로운 관계가 되는 것이다.(4)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위협의 속성은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위협의 존재는 확실할 뿐만 아니라 위협이 언제라도 당장에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다. 각 사물, 각 개인, 각각의 작은 사건도 이 같은 모호한 위협의 담지자로서 나타날 수 있으며, 위협의 전조가 될 수 있다.
경계 사회는 따라서 불신의 사회이며, 일반화된 의심의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경비원인 동시에 테러리스트이다. 그리고 이 실현되지 않는 위협에 대해, 보편적으로 기다림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꿩이 없으니 대신 모든 닭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1) 1978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재임시절, 외국세력으로 인한 국내치안불안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도입된 비지피라트 프로그램은 1995년 7월, 2000년 6월, 2003년 3월,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비지피라트 프로그램은 최초로 1991년 걸프전 발발 당시 발효되었다.
(2) 정부정보국(SIG), 「테러위협에 직면한 정부의 새로운 경계, 예방, 보호 프로그램 소개:비지피라트」, 파리, 2003년 3월 26일.
(3) 위의 문건
(4) 리트레 사전에 따르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이라는 형용사는 속사가 아니라 부가형용사로 사용된다. 속사로 사용될 때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의 의미이다. ‘경계의 눈초리’나 ‘경계를 늦추지 않는 아버지’ 같은 표현은 사용되지만, 개인의 일반적인 상태로서의 ‘경계’는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
- <증언>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
리옹 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들은 페크레스 법안(대학자율권에 대한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학생들은 시위방법으로 대학 봉쇄를 선택했다. 물론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해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 봉쇄라는 선택이 시위학생들과 그들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현재 상황은 이 논쟁을 넘어섰다.
며칠 전부터 대학 총장은 ‘공권력’ 개입을 요청했다. 덕분에 매우 젊고, 선서도 하지 않고, 오만하며, 상황을 통제할 역량도 없는 사설경비원들이 팔에 ‘안전’이라고 써있는 오렌지색 완장을 찬 채, 캠퍼스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들은 아무에게나 심한 욕설을 하고, 누구든지 무조건 ‘너’라고 부르며, 우리에게 이른바 ‘종합’ 카드-도서관 카드로도, 직불카드로도 사용되는 학생증이나 교사증으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카드이다-를 제시하고, 대학에 있는 이유를 정당화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법에 의하면, 대학은 ‘과학적이고 문화적 용도의 공공건물’이 아니던가?
학생들은 어제 아침 이들 사설경비원들에게 맞서 ‘깡패, 불량배!’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비원들 중 몇 명은 여학생들을 붙잡아 수작을 걸고, 또 어떤 이들은 자기나이 또래의 남학생들과 주먹다짐을 하기 때문이다. 한 여학생은 스카프로 목이 졸리기까지 했다.
브롱 캠퍼스 정문과 론느 강변 캠퍼스 슈브렐 거리에는 매일 아침 7시 30분부터 전경들이 시위학생들을 쫓아내려고 대기한다. 브롱 캠퍼스와 론느강변 캠퍼스 앞에 각각 9대의 차량이 서있다. 또한 기동헌병대가 정기적으로 전경들을 지원한다. 나는 어제 거기에 있었다. 내 학생들 중 두 명의 여학생이 나에게 그 전날 전경들에게 ‘폭행당했다’고 말했고, 내가 증인이 되어주기를 바랬다. 세상에, 학생들의 말이 맞았다. 전경들은 학생들을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멀리 던지고, 배와 머리를 마구 구타했다.
어제(12월 11일 화요일) 론느강변에서 리옹 2 대학과 리옹 3 대학에 다니는 두 명의 학생회 간부들이 전경들에게 붙잡혔다. 그런데 체포 직전 사복경찰들이 그 두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확실하다. 두 학생의 체포를 위해 사전적인 ‘정보’ 작업이 진행되었고, 학생운동을 파괴하기위한 표적수사 및 체포였다. 두 학생들은 구금상태이고 오늘 법원에 출두해야한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시위자들에 대한 즉결심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학총장은 거짓투성이며 기만적인 보도 자료를 통해 체포된 학생들이 대학의 ‘외부인’들이고, 체포도 소요 발생 후 진행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시위를 제외하면 어떤 소요도 없었다. 우리 교수들 중에 이를 증명할 사람만도 여러 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 맞서, 나를 포함한 여러 명의 교수들은 수업거부를 선택했다. 나는 경찰, 헌병, 사설경비원들이 돌아다니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내가 일하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을 보여주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전경들에게 떼밀리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신에 가득한 말투로 나에게 ‘너’라고 하대하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경비원이 내 동료를 모욕하는 것을 듣는 것을 거부한다. 더구나 내 동료는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나보다 훨씬 더 존경할만한 외모에 교수가 들고 다니는 전형적인 가죽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경비원은 내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를 훈제고기를 만들 거야!” 내가 알기로 우리는 지금 경찰국가에 살고 있지 않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명확하게 말해야한다. 왜냐하면 이는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파업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있는 줄 알았다…….
더구나 경찰들, 경비원들, 군인들의 편의를 위해 학교의 모든 비상구가 봉쇄되었다. 어떤 교수들과 학생들은 그 같이 위험하고 해로운 분위기에서 수업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화재라도 발생할 경우, 그들은 이미 노후한 건물에서 산채로 타죽을 수밖에 없다…….
12월 12일 리옹 2 대학 교수의 증언
기사입력 : 2008-03-19 18:56:44
최종편집 : 2008-03-21 11:01:32
최종편집 : 2008-03-21 11:01:32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