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북외교 전환 예고되어 있었다

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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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의 대북정책은 이미 작년 말에 이전 내각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작년 11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후쿠다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는 달리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는 것을 극구 반대해 온 일본 정계와 달리 후쿠다 총리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당시 자국 내 전문가들은 후쿠다 총리가 이를 기회 삼아 일본의 대북 외교 정책을 전환 하고 싶은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했다. 동시에 올해 내 언제라도 후쿠다 총리가 그 바뀐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일 관계개선 초읽기
지난달 11~12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는 매우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이 회의로 막다른 골목에 놓여있던 북일 양국 간의 관계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후쿠다 총리는 북일회담의 결과에 대해 “지금까지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제 교섭과정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말해 북한과 ‘대화 단절의 시대’에서 ‘대화의 시대’로 변화했다는데 방점을 찍었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북측이 재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천명하는가 하면 38년 전에 일어났던 일본항공기 요도호 납치범들의 인도에도 협력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일본은 북을 향해 독자적으로 행했던 경제 제재의 일부를 해제, 인도적 물자 수송에 한해 만경봉호를 포함한 북측 선박의 입항을 인정키로 했다. 무엇보다 일본의 대북 제재 해제는 회담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4일 전 비공식 실무그룹 회의에 이어 공식 실무그룹 회의가 열린 이후 급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실무그룹 회의에서 북측은 일본측에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해결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겠다”며 “해결됐다고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측은 그간 ‘납치는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북이 일본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작업이 막바지에 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측을 테러지원국 지정 이유로 요도호 사건의 납치범을 숨겨두고 있는 것 등을 꼽았다.
미국 측도 북일 간 회의의 큰 진전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미 국무성 당국자는 회담이 끝난 이튿날, 북측이 납치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히자, “우리는 북한의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요구해왔다”며 “우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이 강구하는 어떠한 성의 있는 조치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이 가까운 시일 내에 핵계획 신고서를 제출하면 해제를 향한 본격적인 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문제는 북-일, 북-미, 그리고 6자가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는 구도 속에서 납치 문제를 비롯한 북일 간의 현안을 어떻게 진전시킬지의 여부”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핵 포기를 목표로 한 톱니바퀴가 실제 돌아가기 시작하면 일본은 북한을 향한 에너지 지원에 합류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북한을 납치 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게 된다”고 분석했다.

후쿠다는 왜 방향 전환을 택했나
지난 5월 17일 워싱턴 포스트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북미 대화 속에서 일본이 외톨이 신세를 느끼고 있다”며 “일본인 납치문제는 물론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폐기 문제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사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과 미국이 핵 신고 합의가 큰 진전을 이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일본을 향한 미국, 중국 등 주변 국가의 북일 관계 개선 요구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납치 문제 해결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일본 입장에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북핵 문제 해결 선상에서 더 이상 납치문제로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5월 중순, 방북을 목표로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을 위해 발족된 ‘북일 국교정상화 추진 의원연맹’만 봐도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눈에 띠었다. 여야 6당 의원 40명으로 이루어진 이 연맹은 ‘의원 외교’를 통한 북일 국교정상화를 강조했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정부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후쿠다 총리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라며 암묵적인 동의를 나타냈다.
그런 면에서 지난 6월 11~12일 개최된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는 급격히 변화한 일본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북일 양국이 9개월 만에 자리를 함께 하게 된 배경엔 미국의 ‘공’이 컸다. 5월 말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나 그 포석을 깔았다. 당시 국내의 한 정부 고위 소식통은 “일본은 국내 정치적인 차원에서 우려를 많이 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전체적인 6자회담 진전에 심각한 저해요소로 떠오르기 전에 일본과 북한간의 진전에 도움을 주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도 “미 상원이 5월 말 북핵 6자회담 추진에 필요한 예산 6천800만 달러를 승인하고 핵실험 국가에 대한 지원을 금지한 글렌수정안을 북한에 대해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이는 북핵 협상의 급속한 진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일 간 현안 협의도 진행돼야 미국 내 여론의 뒷받침이 이뤄지는 국면이 된다. 이 점은 북한도 잘 알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식량위기에 처한 북한에 대해 50만톤의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고, 한국도 식량지원 용의를 내비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역시 뒤로 물러설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후쿠다 총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북한의 재정난과 관계가 있다. 이들 문제가 해결된다면 일본은 식민지 보상으로 100만 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현찰로 북한에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해 향후 일본 정부의 대북 외교에 대한 변화를 설명했다.
다만 후쿠다 총리가 방향 전환을 나타내는 시점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부시 행정부가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나면 ‘미국의 요구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 후쿠다 총리의 저자세’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대북 경제 제재를 일부만 해제한 것도 자국 내 비난 여론을 조금이나마 잠식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되며, 단계적인 (대북) 완전 해제도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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