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스터 ‘눈물’ 원자바오 총리

마오춘 유 | 미해군학교 동아시아 전쟁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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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문제 연구자들은 중국에서 발생한 최근의 자연재해를 지켜보면서 중국 정부가 힘을 쏟고 있는 잘 조직된 대규모 구호사업과 정치선전을 가장 빈번히 언급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월의 폭설과 요즘 쓰촨성 지진 사건에서 보여 주듯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대형 프르젝트를 조직하는 것에 매우 탁월하다. 중국 정부는 전 세계에서 그런 정도의 방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또 동원하고 싶어 하는 극소수의 정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
  •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지난 5월23일 대규모 지진 피해를 입은 쓰촨성 지역의 임시학교를 방문해 지진사태에서 생존한 학생들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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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많은 ‘원 할아버지’
국가 전체를 총 동원하는 중국공산당의 능력은 국가와 지방정부, 사회운동에 관한 한 독보적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소 3천 만 명의 중국인들을 아사하게 만든 1950년대의 ‘대약진 운동’이나 각종 대규모 자연재해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국가를 총동원하는 중국공산당 정부가 주도한 대규모 사회운동의 역사를 보노라면 사실 ‘항진구재(抗震救災, 지진에 대항하여 재앙에서 벗어나자)’를 외치는 요즘과 같은 국가적 켐페인은 그 정도가 그리 심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75년 양쯔강이 범람하여 적어도 8만5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나 1976년 탕샨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24만2천 명이 희생됐을 때, 또는 1998년의 대홍수로 ‘항홍방재(抗洪防災, 홍수에 대항하여 재앙을 막자)’고 외치던 시기의 캠페인은 훨씬 더 큰 규모의 구호 사업이자 정치 선전전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중국 정부가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2008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중국 지도층으로서는 중요도가 훨씬 더 높은 순위의 정치 현안이자 대축제에 쏠린 인민들의 관심을 지진으로 돌려놓고자 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주도한 과거의 재난대비 사회운동과 달리 이번 쓰촨성 지진 관련 켐페인에서 유일하게 특이한 점은 지진의 잔해를 걷고 갑자기 솟아올라 국가적 영웅이 되어버린 어떤 의외의 인기 스타의 존재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아직도 소년티가 넘쳐 흐르는 66세의 중국총리 원자바오다. 지진이 일어난 지 몇 시간 만에, 그러니까 엄청난 사상자 수가 공개되기 훨씬 이전에 원자바오 총리는 지진으로 파괴된 마을들을 위로하기 위해 진앙지로 날아 갔다.
지진이 일어난 이후 그는 대규모 구호 사업과 정치적 선전전의 최고 책임자로서 중국 전역의 신문이나 전파 매체에 매일 노출됐다.
전국의 도시와 교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관영 텔레비전 방송에서 원자바오 총리를 주시했다.
특히 붕괴된 건물의 낙석에 맞아 상처를 입은 원자바오 총리가 “이 돌에는 아직도 이 건물에 묻힌 어떤 이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며 치료를 거부했을 때 중국인들은 거의 원 총리에게 열광했다. 네티즌들은 채팅방에 몰려들어 어떤 마을에서 울고 있는 고아들을 위로하는 원자바오 총리의 몸짓과 행보에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인들에게 원자바오 총리는 ‘인민의 총리’나 ‘원 할아버지’로 널리 불리게 됐다.
관료기구의 정점에 있는 원자바오 총리는 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했다.
1965년, 콴수 지방 북서부의 지질학 연구 모임의 하급 관리로서 공산당 당무를 맡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그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당의 지방 권력집단 안에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초 중국 공산당 후야오방 주석이 원자바오를 발굴하게 된다. 후야오방 주석은 그에게 공산당 중앙정부의 부부장으로서 일개 시골 마을인 콴수 지방에서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있는 베이징으로 즉각 날아 올 수 있도록 헬기도 지원했다.
후야오방이 1987년 지식인층의 불만을 제대로 잠재우는데 실패하여 정치적으로 퇴출 당했을 때 원자바오만큼은 이 때의 정권 교체기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는 차기 중국 공산당 주석인 자오쯔양의 밑에서 당 중앙위원 겸 중앙서기처 후보서기로 임명되었다. 이 기간동안 자오 주석과 원자바오는 격동의 1989년, 천안문 광장 민주화 운동을 맞게 된다.

원자바오, 줄타기의 명수?
자오 주석이 천안문 광장의 학생 시위대를 살인적으로 진압하기로 한 결정을 반대하자 이는 원자바오의 정치 역정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자오 총서기는 개인적으로 천안문 광장을 찾아가 시위대에게 어서 이 광장을 떠나 유혈사태를 피하자고 동정어린 설득에 매달렸다. 이때 원자바오 역시 홀로 자오쯔양 주석을 따라 나섰다. 자오 주석은 즉각 퇴출 당했고 2005년 1월 숨질 때까지 15년 간 가택연금에 묶이게 된다.
그러나 원자바오 총리는 비록 기적적으로 정치적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다만 악명 높은 대학살이 벌어지기 전 천안문 광장에서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 그의 상사의 이미지는 그와 함께 영원히 남아 이후에도 그의 정치 역정을 파란만장하도록 만들었다.
이후에도 그는 당 중앙 지도부 안에서 정치적 성장을 거듭했고 장쩌민 주석 아래에서 부총리를 맡았다. 2003년, 장쩌민 주석이 사망하고 후진타오가 중국의 제4세대 지도자로서 공산당 주석 자리에 오르자 원자바오는 중국의 총리가 된다. 바로 지금까지 원자바오가 이어오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서열 3위의 지도자 자리는 그때부터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원자바오는 중국에서 가장 유별난 공직자가 되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창립된 1921년 이래 후야오방, 자오쯔양, 장쩌민, 후진타오 등 4명의 주석과 함께 일한 유일한 정치국 상임위원이다. 이들 네 명 중 두 명은 숙청되어 중국의 살인적인 권력투쟁의 순환 속에서 사실상 역사적 실종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원자바오는 대결을 피하며, 겸손하고, 타협적인 자세로 이리도 특이한 위업을 중국 최초로 이룬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곧 어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 지조 없는’ 자세를 유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변석개하는 중국의 정치 게임에서 마지막 생존자가 되기 위해, 정치인은 지금 바람이 불고 있는 방향으로 누워야 했다.
예를들어 원자바오 총리는 쓰촨성 지진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몇 주 동안은 티베트에서 발생한 폭동의 배후 조정자로서 달라이 라마를 지목한 것을 보자. 그는 “이 사태가 달라이 라마에 의해 조직, 계획, 배후조정, 선동 되었다는 매우 많은 사실과 증거가 있다”며 “이는 독립이 아니라 평화로운 대화를 원한다는 달라이 라마 세력의 지속적인 요구가 모두 거짓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강경노선을 채택하는 일은 원자바오 총리 같은 사람에게는 독립적인 사고나 자신만의 정치적 비전을 거세해야 가능하다.
사실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원자바오는 당시 정치 엘리트층의 뜻과는 반대로 학생 시위대를 향해 적지 않은 온정을 보였기 때문에 마치 전염병 같았던 천안문 사태 문제를 비켜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후 그는 필요에 따라서는 민주화를 억누르는 당의 결정도 지지해 왔다.
그런데 원자바오 하면 대중들이 가장 첫 번째로 떠올리며 동시에 가장 오래 기억에 남기는 그의 이미지는 바로 ‘미스터 눈물’이다. 이는 인재나 자연재해가 발생한 직후에 곧잘 울음을 쏟는 그의 성격에 기인다.
그는 지난 1월 중국에 폭설이 내려 국가의 주요 교통망이 마비됐을 때도 울음을 터뜨렸고, 갱도 붕괴로 광부들이 몰사한 탄광사고 현장에서도 울었고 지진이 난 곳에서도 울었다. 대중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원자바오 총리의 모습은 국영 텔레비전 앞에서 이 피해자들을 보고 슬픔과 동정에 가득한 표정으로 울먹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총리의 눈물’이라는 문제는 특히, 급격하게 퍼지고 있는 인터넷 게시판 공간을 통해 중국 내에서 여러 번 논쟁거리가 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들은 물론 주로 원자바오의 눈물에 공감하는 경향에 쏠려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총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에게는 눈물이 아닌 그 이상의 용기와 희망, 해법 제시가 필요하다”며 “총리의 울음보가 생활기반이 파괴되고 유린된 사람들에 대한 원초적인 슬픔이고 동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이 어려운 시기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약하디 약한 마음을 나타낸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원자바오의 눈물에 대해 가장 신랄한 비판은 그의 동정심이 티베트인들의 고통에는 전혀 내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사실 총리의 울음보에 관한 토론은 하찮은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의 통렬하고 막대한 정치적 함의는 원자바오의 정치적겵ㅍ탔?스승인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주석이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대에게 “곧 킬링필드가 될 것이 분명한 이 자리에서 피해 달라”고 사정하며 울었다는 유명한 일화와 관련되어 있다.
만약 자오 전 주석이 결단력이 없어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울지도 못했다면, 혹은 그 반대로 소련 몰락의 날 보리스 옐친처럼 구체제를 거부하기로 한 군대를 지휘하며 용감하게 그 탱크 위에 섰더라면, 중국은 대담하고 전망을 제시할 능력있는 정치적 지도자를 가지게 됐을 것이며 새로운 세계 정치질서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결정하는 마지막 중요한 순간에는 러시아 정부도 베이징 정부도 눈물을 믿지 않았다. 자오 전 주석은 지금은 힘과 비전을 완벽히 상실한 원자바오 총리를 정치·군사적 수단들을 스스로 결정하며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만들 수 있었던 거대한 역사적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지금 자오 주석의 전 부하인 원자바오는 그의 유산을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


“원 총리, 그만 좀 울고 대책을 내라”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원자바오가 이제는 눈물을 좀 그만 흘리고 중국의 더 많은 근본적 문제를 없앨 전망과 해법을 내 보이길 요구한다. 예를 들어 천안문 사태로 잘 알려진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문제점에 단호히 맞서는 일 말이다. 천안문 사태는 용감하게 일당독재를 들어냈으며 진정한 전국적 선거를 이끌어 냈다.
불행히도 원자바오는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며 울음을 짜내는 일은 계속하고 있지만 중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한 해법이나 비전은 전혀 내 놓지 않는다. 중국의 인터넷 채팅방에서 많은 사람들은 중국 최고 관료로서 원자바오는 그저 탁월한 관리일 뿐 훌륭한 지도자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관리자의 관심은 어떤 일들이 어떻게 하면 바르게 될 것인가에 달려있고 지도자의 관심은 어떤 바른 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좀 더 창대한 리더쉽이 없다면, 훌륭한 관리 기술을 가진 원자바오는 잘해봐야 전화기 너머의 무능력한 공무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이나 할 따름이다. 현재의 쓰찬성 대지진 구호 운동 중 텔레비전에서 보여 준 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래봐야 원자바오 총리는 결국 중국의 비대한 관료 체제와 완고한 정치 풍토 속 도처에 널려있는 무능력한 공무원들의 연결망을 뿌리 뽑지 못할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비극은 원자바오가 최근 그의 나라의 구시대적 정치제도를 보전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천안문 사태 19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초기 시절 가졌던 당의 기본 원칙을 앞으로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고 썼다. 이것이 원자바오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희망해 보자. 왜냐하면 또 다른 100년 역시 중국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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