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영구집권 미얀마의 미래는
미얀마 군사정부는 국내외 반발을 무릅쓰고 신헌법 찬반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얀마는 1988년 군사정권이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제압한 후 1974년에 제정된 헌법의 효력을 중지시키면서 현재 헌법이 없는 상태다. 현재 미얀마 군사정부에겐 민생보다는 영구집권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신헌법 제정이 더 시급한 상황이다. 즉 군정 주도로 통과된 신헌법은 상하 양원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사실상 군정체제를 굳히려는 의도다.
국가평화발전평의회(SPDC, 군부최고 지도자들의 정책결정기관으로 탄쉐가 의장임)는 2008년 2월 9일 제1서기인 티하 투라 틴 아웅 민 우 중장의 이름으로 서명한 2008-1호와 2008-2호 법령을 공고했는데 2008-1호는 곧 완성 예정인 초안 헌법을 채택하기 위해 2008년 5월 전국적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는 것이고, 2008-2호는 이 채택된 헌법에 따라 2010년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공고는 효과적인 국민화해 진행 과정에 대해 유엔 등 국제사회 뿐만 아니라 국내외 버마 국민들 사이에서 일치된 요구가 있을 때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 기간은 아웅 산 수지 여사와 국가평화발전평의회 국제관계 장관인 우 아웅 지가 앞으로 국가평화발전평의회와 야당사이의 진지한 대화를 준비하기 위해 첫 회동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고를 통해 국가평화발전평의회는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의 선의의 호소를 무시했고 버마 시민들의 국민적 화해 염원을 말살해 버렸다. 그 결과 버마의 정치적 난국을 해결하려는 협상은 끝장이 난 것이다.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2월 9일, 세 달밖에 남지 않은 5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할 때 헌법 초안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10일 후 2월 19일 초안 헌법 작성 분과에서는 초안을 끝마쳤다고 확언했다. 그 초안을 담은 책자들은 3월 마지막 주에 실제 팔리게 되었고, 4월 9일 선거 관리 위원회는 국민투표가 5월 10일 실시될 것이라는 것을 공고한 2008-4호령을 발표했다.
또 2월에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2008-2호를 발표함으로써 총선은 2010년, 채택된 헌법에 따라 실시될 거라고 선언했는데 그들은 아직 헌법 초안을 읽어볼 기회도 없었던 국민들의 생각과 더구나 다가오는 국민투표에 투표하지 않을 국민들의 견해는 묵살해 버렸다. 분명한 것은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버마 국민들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시민들에게 헌법 초안을 승인하도록 강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군부 영구집권 위한 헌법개정
1993년부터 2007년까지 국가평화발전평의회는 국가 헌법 제정을 위한 기본 원칙을 만들기 위한 연례 국민의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1990년 선출된 대부분의 국회의원들과 소수민족 지도자들은 국민 의회 조직 과정 내내 제외되었다. 군부통치는 그러한 헌법 제정의 기본 원칙을 지지하고, 헌법과 군법이 통합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고 있었다. 그러므로 국민투표는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대중들에게 헌법 초안을 채택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버마에서 계속 군법이 유지되도록 강요하는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국가 초고 헌법(2008)에 담긴 헌법 제정 기본 원칙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1) 국가평화발전평의회 헌법에 따르면 군수뇌(군참모총장)가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될 뿐만 아니라 군사문제를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또 행정, 입법, 사법권은 군대나 군수뇌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실제 군수뇌가 전국적 혹은 지역적으로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 있고, 사법권을 행사함으로써 국가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군수뇌는 군사 쿠데타를 도모할 권한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2) 그리고 연방, 국가, 지역 국회의원들의 25%는 군참모총장이 지명한다. 그래서 그들은 입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을 갖는다. 국회에서는 군사대표자들이 제출한 군사 문제와 군재정 관련 안건은 반드시 승인되어야 한다.
3) 국회에서, 군대표로 지명된 군인은 부통령이 되는 것이 확실하고, 군대표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은 군참모총장 이상의 힘도 없고, 군대를 통솔할 권한도 없다. 게다가 대통령은 군수뇌(참모총장)가 추천한 자를 국방장관, 내무장관, 국경담당장관 등과 같은 중요한 직책에 임명해야 한다.
4) 대통령은 최고법원부터 지방 법원까지의 판사를 임명할 수 있고 면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군과 관련된 사건은 오직 참모총장이 임명한 군사 법정만이 조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법관들도 군인들에게는 어떤 판결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군참모총장과 군대는 국가의 사법제도 위에 군림할 것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교묘하게 조종할 것이다.
5) 정치 정당은 선거 입후보가 허용되지만 승리를 하더라도 정부를 구성할 수 없다. 그들은 국회에서 군부 몫을 제외하고 75%의 의석만을 두고 겨룰 수 있는데, 그래서 한 정당이 75%의석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해도 그 정당은 군 대표들의 지원 없이는 정부를 조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군인 대표들로 나머지 25%의 국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만일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정치 정당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정당원 지위에서 사퇴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 정당 출신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다.
6) 그리고 25%의 국회의원들은 군대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직접 수상을 임명하고, 대통령 승인을 거친 후에 국회를 구성하며, 군 참모총장이 선정한 사람들로 구성하여 정부 안전 및 국경 담당 부서를 조직하고,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판사들에 의해 국가의 사법 문제가 처리되는 등 이 모든 것이 소수 민족 집단이 평등하게 취급되지 못하거나 그들 자신의 행정자치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7) 현재의 헌법을 수정하려면 75%이상의 국회의원 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25%의 국회의원은 군대가 통제하므로 언제든지 75%이상의 지지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8) 범죄자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선거에 입후보할 자격이 박탈된다. 그래서 정치적 행동으로 수감된 사람들은 이미 모든 선거에서 배제되어 왔고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도 선거에 후보로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아웅 산 수지 여사(영국인과 결혼한) 역시 어떤 선거에서도 후보 적격 자가 될 수 없다. 더욱이 헌법이 채택되면 현재 합법적인 정치 정당들은 다음 선거 이전에 정당을 해산하고 재등록해야 한다. 그러므로 NLD(버마민족민주동맹)가 재등록하거나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9) 현재 초안 헌법이 채택되기만 하면 버마 국민들은 영원히 군사 독재 정권의 손아귀 아래 노예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참모총장과 군대는 법 위에 군림할 것이고, 버마 연방 연대 발전 협의회(USDA)와 군부를 배경으로 하는 사회 조직은 군부의 통제아래 운영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서민들은 3등 시민으로 전락할 것이고 군부와 관련된 사회 단체와 사업체 뿐만이 아니라 군부와 USDA 위원들의 조종을 받을 것이다.
결국 2008년의 초안 헌법은 완전히 군사정권에 유리하게 작성된 것이 분명하며, 국민투표는 단지 법으로 연장된 군법을 확고히 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다가오는 국민투표는 과거 히틀러와 피노체트가 시행한 것과 다를 게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1990년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진 버마의 마지막 총선에서 전국적 승리를 거둔 NLD는 2008년4월 2일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특별 호소문을 발표했다.
1. 앞으로 실시될 국민투표로 결정될 헌법(초안)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다.
2. 이 헌법은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직접 뽑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3. 게다가, 이 헌법은 “통치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적 기본 원칙에 철저히 어긋나는 것으로 군부는 오랫동안 버마 국민들이, 특히 소수민족들과 함께 염원해 온 민주주의와 인권을 쉽게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4. 역사는 국내외적으로 반복되기 마련인데,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을 잡고 나라를 통치하는 어떤 집단이나 조직도 언젠가는 반드시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5. 그래서, 우리는 버마 국민들과 소수민족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반드시 “NO”라고 용감하고 과감하게 반대표를 던지도록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5월 10일 국민투표 이전, 2008년 5월 2일과 3일 버마를 강타한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인해 양곤과 페구 지역과 몬주와 카렌주, 이라와디 지방에서는 수십만의 버마인들이 죽고, 부상당하고 아직도 실종 상태로 남아있다. 이 지역은 물과 전기가 끊기고, 교통이 두절되고 물가는 상승했으며 건강상태마저 악화되었고 게다가 버마국민들에게 필수적인 기반구조마저 파괴되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6일 버마 연방 국민투표 개최 위원회는 2008-8호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태풍 피해 지역인 양곤 지역 40개 시와 이라와디 지방의 7개 시를 제외한 전국에서 2008년 5월 10일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는 것이었다. 또 태풍으로 미처 참여하지 못한 47개 시의 국민투표는 2008년 5월 24일 실시될 거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재난 지역에서의 구호와 재건 작업은 5월 24일까지 끝날 수 없었다. 당국은 계속 국민들의 어려움을 이용했다. 국민투표는 일부 지역만이 아니라 버마 전역에서 연기되어야 했으나 이런 악조건하에서도 국민투표를 강행한 것은 통탄할만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NLD는 국내 여건이 좋아지면 버마 전역에서 동시에 투표할 것을 요구했으나 군부독재는 예정대로 투표를 실시했다. 이 막강한 자연 재앙에 이어 군부체제가 국민들의 사회적 재난보다 헌법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데 우리는 경악할 뿐이다.
유례없던 사이클론 나르기스 피해로 인한 참혹한 상황에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국민들과는 상관없이 국가평화발전평의회는 5월 10일과 24일, 몰염치하고도 강제적으로 국민투표를 강행했고 선거부정을 자행하고 국민들에 대한 위협을 통해 93.48%의 투표율로 헌법이 통과되었음을 발표했다. 5월 29일자 성명은 탄쉐 장군의 서명으로 발표되었다.
5월 26일 이후 대법원장인 우 아웅 토가 이끄는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이 승인된 자신들의 성공을 강조하기 위해 투표 결과를 발표했는데 5월 19일과 24일 실시된 투표에서 2천 7백만 명 이상의 유권자 가운데 98.12%인 2천 6백만 명이상이 투표하여 92.48%에 이르는 2천 4백만 명 이상이 찬성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이클론 강타 일 주일 후 선거위원회는 5월 10일 278개 시에서 실시된 투표에서 헌법이 승인된 사실을 공표했다.
그들은 국민투표 법 23조를 근거로 투표 결과를 발표했는데 버마 국민들이나 국제 사회는 이러한 성명이 미리 준비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획기적인 찬성 결과가 나오게 된 군대의 대성공에 놀라지도 않았다.
분명히, 군사 정권은 국민들의 거부권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3월 27일, 국가평화발전평의회 의장이 했던 연설에서 헌법의 승인 여부를 모르더라도, 새 헌법에 따라 다당이 참여하는 총선을 거행하여 정권을 이양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은 자신들이 관리한 1990년 5월의 선거 결과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자신들이 뽑은 사람들을 통해 14년이나 걸려 이 일방적 헌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국민들은 군사당국과 그 하수인들이 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법과 규정을 위반한 것을 분명히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들의 발표에 놀라지 않았다.
사실 군부가 제정한 헌법은 진정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고 국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만일 국민들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십만 키야트의 벌금을 부과하게 되고 삼 년간 투옥될 것이라고 하며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적절한 방식으로 헌법을 조정하는 대신 야당 활동가들의 어떤 조직활동도 허용하지 않고 심지어 체포를 감행하면서 국민들에게 찬성표를 던지도록 요구했다.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국민 투표법을 악용함으로써 선거 부정과 절도 등으로 강제적으로 찬성표를 획득하려고 했다. 심지어는 사이클론 피해 지역에서도 죄없고 도움도 받지 못하고 버려진 국민들이 국제 지원의 대가로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버마인들과 국제사회 저항 직면할 것
현재 국민투표는 끝났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그것은 버마인들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과 다른 민주국가들이 이러한 헌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군부의 헌법은 민주주의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신군사주의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몇몇 세계 지도자들은 최근 이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구 몇몇 국가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사안을 상정하려고 애쓰고 있고 특히 미국, 영국과 프랑스는 이러한 간접적인 군부의 술책을 세계 각국에 보여줌으로써 군사정권의 국제사회에 대한 대응 태도에 인내의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태국과 같은 보호무역주의 국가에서는 평소와 같이 군사정권이 무엇을 하든간에 그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버마의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도 밝히지 않고 있다. 군부가 강제적으로 악질적으로 자신들 로드맵의 주요 단계를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많은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군사정권은 NLD와 다른 반대 단체 등 반정부 세력들과 불가피한 대응을 하게 될 것이다. NLD는 공식적으로 헌법이 포괄하지 못한 것을 거론하며 국민투표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또한 군사정권이 1990년 선출된 국회의원들과 새 헌법 초안에 대해 논의하는 데도 실패했고 또 98-5호에 대해 국회의 공식적 비판도 금지했으며 비판자에 대해서는 20년 이상의 수감을 허용한 사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5월 27일, NLD는 92% 이상의 투표자들이 국민투표에서 헌법 초안을 인정했다는 군사정권의 주장을 부인했다.
오늘날 버마 국민들의 정치, 국제적 관심사에 대한 자각은 군부에 커다란 위협과 도전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 특히 새로운 세대는 1970년대 세대와 매우 다르고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외부와 격리되어 지낼 수 없다. 모든 버마인들은 군부독재 하에서 버마가 정치, 사회, 경제적 발전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군사 체제에 어떤 방식으로든 완강히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군부의 장군들도 자신들의 권력을 영속시키려 애써 노력할 것이다. 불행히도 버마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복잡하고도 다방면에 걸친 위기상태에 빠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문명국인 국제사회는 버마 군부 체제의 인권 파괴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을 것이고 이전처럼 버마 문제를 다른 나라의 내부 문제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헌법은 군사 정권에 의해 이전에 또 한번 제정되었던 1974년의 헌법처럼 폐지되어야 한다.
국가평화발전평의회(SPDC, 군부최고 지도자들의 정책결정기관으로 탄쉐가 의장임)는 2008년 2월 9일 제1서기인 티하 투라 틴 아웅 민 우 중장의 이름으로 서명한 2008-1호와 2008-2호 법령을 공고했는데 2008-1호는 곧 완성 예정인 초안 헌법을 채택하기 위해 2008년 5월 전국적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는 것이고, 2008-2호는 이 채택된 헌법에 따라 2010년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공고는 효과적인 국민화해 진행 과정에 대해 유엔 등 국제사회 뿐만 아니라 국내외 버마 국민들 사이에서 일치된 요구가 있을 때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 기간은 아웅 산 수지 여사와 국가평화발전평의회 국제관계 장관인 우 아웅 지가 앞으로 국가평화발전평의회와 야당사이의 진지한 대화를 준비하기 위해 첫 회동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고를 통해 국가평화발전평의회는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의 선의의 호소를 무시했고 버마 시민들의 국민적 화해 염원을 말살해 버렸다. 그 결과 버마의 정치적 난국을 해결하려는 협상은 끝장이 난 것이다.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2월 9일, 세 달밖에 남지 않은 5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할 때 헌법 초안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10일 후 2월 19일 초안 헌법 작성 분과에서는 초안을 끝마쳤다고 확언했다. 그 초안을 담은 책자들은 3월 마지막 주에 실제 팔리게 되었고, 4월 9일 선거 관리 위원회는 국민투표가 5월 10일 실시될 것이라는 것을 공고한 2008-4호령을 발표했다.
또 2월에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2008-2호를 발표함으로써 총선은 2010년, 채택된 헌법에 따라 실시될 거라고 선언했는데 그들은 아직 헌법 초안을 읽어볼 기회도 없었던 국민들의 생각과 더구나 다가오는 국민투표에 투표하지 않을 국민들의 견해는 묵살해 버렸다. 분명한 것은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버마 국민들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시민들에게 헌법 초안을 승인하도록 강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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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군사정부 최고 지도자 탕슈에가 군사정부가 추진한 개헌 국민투표를 위해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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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
군부 영구집권 위한 헌법개정
1993년부터 2007년까지 국가평화발전평의회는 국가 헌법 제정을 위한 기본 원칙을 만들기 위한 연례 국민의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1990년 선출된 대부분의 국회의원들과 소수민족 지도자들은 국민 의회 조직 과정 내내 제외되었다. 군부통치는 그러한 헌법 제정의 기본 원칙을 지지하고, 헌법과 군법이 통합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고 있었다. 그러므로 국민투표는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대중들에게 헌법 초안을 채택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버마에서 계속 군법이 유지되도록 강요하는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국가 초고 헌법(2008)에 담긴 헌법 제정 기본 원칙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1) 국가평화발전평의회 헌법에 따르면 군수뇌(군참모총장)가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될 뿐만 아니라 군사문제를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또 행정, 입법, 사법권은 군대나 군수뇌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실제 군수뇌가 전국적 혹은 지역적으로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 있고, 사법권을 행사함으로써 국가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군수뇌는 군사 쿠데타를 도모할 권한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2) 그리고 연방, 국가, 지역 국회의원들의 25%는 군참모총장이 지명한다. 그래서 그들은 입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을 갖는다. 국회에서는 군사대표자들이 제출한 군사 문제와 군재정 관련 안건은 반드시 승인되어야 한다.
3) 국회에서, 군대표로 지명된 군인은 부통령이 되는 것이 확실하고, 군대표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은 군참모총장 이상의 힘도 없고, 군대를 통솔할 권한도 없다. 게다가 대통령은 군수뇌(참모총장)가 추천한 자를 국방장관, 내무장관, 국경담당장관 등과 같은 중요한 직책에 임명해야 한다.
4) 대통령은 최고법원부터 지방 법원까지의 판사를 임명할 수 있고 면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군과 관련된 사건은 오직 참모총장이 임명한 군사 법정만이 조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법관들도 군인들에게는 어떤 판결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군참모총장과 군대는 국가의 사법제도 위에 군림할 것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교묘하게 조종할 것이다.
5) 정치 정당은 선거 입후보가 허용되지만 승리를 하더라도 정부를 구성할 수 없다. 그들은 국회에서 군부 몫을 제외하고 75%의 의석만을 두고 겨룰 수 있는데, 그래서 한 정당이 75%의석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해도 그 정당은 군 대표들의 지원 없이는 정부를 조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군인 대표들로 나머지 25%의 국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만일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정치 정당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정당원 지위에서 사퇴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 정당 출신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다.
6) 그리고 25%의 국회의원들은 군대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직접 수상을 임명하고, 대통령 승인을 거친 후에 국회를 구성하며, 군 참모총장이 선정한 사람들로 구성하여 정부 안전 및 국경 담당 부서를 조직하고,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판사들에 의해 국가의 사법 문제가 처리되는 등 이 모든 것이 소수 민족 집단이 평등하게 취급되지 못하거나 그들 자신의 행정자치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7) 현재의 헌법을 수정하려면 75%이상의 국회의원 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25%의 국회의원은 군대가 통제하므로 언제든지 75%이상의 지지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8) 범죄자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선거에 입후보할 자격이 박탈된다. 그래서 정치적 행동으로 수감된 사람들은 이미 모든 선거에서 배제되어 왔고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도 선거에 후보로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아웅 산 수지 여사(영국인과 결혼한) 역시 어떤 선거에서도 후보 적격 자가 될 수 없다. 더욱이 헌법이 채택되면 현재 합법적인 정치 정당들은 다음 선거 이전에 정당을 해산하고 재등록해야 한다. 그러므로 NLD(버마민족민주동맹)가 재등록하거나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9) 현재 초안 헌법이 채택되기만 하면 버마 국민들은 영원히 군사 독재 정권의 손아귀 아래 노예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참모총장과 군대는 법 위에 군림할 것이고, 버마 연방 연대 발전 협의회(USDA)와 군부를 배경으로 하는 사회 조직은 군부의 통제아래 운영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서민들은 3등 시민으로 전락할 것이고 군부와 관련된 사회 단체와 사업체 뿐만이 아니라 군부와 USDA 위원들의 조종을 받을 것이다.
결국 2008년의 초안 헌법은 완전히 군사정권에 유리하게 작성된 것이 분명하며, 국민투표는 단지 법으로 연장된 군법을 확고히 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다가오는 국민투표는 과거 히틀러와 피노체트가 시행한 것과 다를 게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1990년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진 버마의 마지막 총선에서 전국적 승리를 거둔 NLD는 2008년4월 2일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특별 호소문을 발표했다.
1. 앞으로 실시될 국민투표로 결정될 헌법(초안)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다.
2. 이 헌법은 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직접 뽑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3. 게다가, 이 헌법은 “통치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적 기본 원칙에 철저히 어긋나는 것으로 군부는 오랫동안 버마 국민들이, 특히 소수민족들과 함께 염원해 온 민주주의와 인권을 쉽게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4. 역사는 국내외적으로 반복되기 마련인데,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을 잡고 나라를 통치하는 어떤 집단이나 조직도 언젠가는 반드시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5. 그래서, 우리는 버마 국민들과 소수민족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반드시 “NO”라고 용감하고 과감하게 반대표를 던지도록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5월 10일 국민투표 이전, 2008년 5월 2일과 3일 버마를 강타한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인해 양곤과 페구 지역과 몬주와 카렌주, 이라와디 지방에서는 수십만의 버마인들이 죽고, 부상당하고 아직도 실종 상태로 남아있다. 이 지역은 물과 전기가 끊기고, 교통이 두절되고 물가는 상승했으며 건강상태마저 악화되었고 게다가 버마국민들에게 필수적인 기반구조마저 파괴되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6일 버마 연방 국민투표 개최 위원회는 2008-8호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태풍 피해 지역인 양곤 지역 40개 시와 이라와디 지방의 7개 시를 제외한 전국에서 2008년 5월 10일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는 것이었다. 또 태풍으로 미처 참여하지 못한 47개 시의 국민투표는 2008년 5월 24일 실시될 거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재난 지역에서의 구호와 재건 작업은 5월 24일까지 끝날 수 없었다. 당국은 계속 국민들의 어려움을 이용했다. 국민투표는 일부 지역만이 아니라 버마 전역에서 연기되어야 했으나 이런 악조건하에서도 국민투표를 강행한 것은 통탄할만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NLD는 국내 여건이 좋아지면 버마 전역에서 동시에 투표할 것을 요구했으나 군부독재는 예정대로 투표를 실시했다. 이 막강한 자연 재앙에 이어 군부체제가 국민들의 사회적 재난보다 헌법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데 우리는 경악할 뿐이다.
유례없던 사이클론 나르기스 피해로 인한 참혹한 상황에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국민들과는 상관없이 국가평화발전평의회는 5월 10일과 24일, 몰염치하고도 강제적으로 국민투표를 강행했고 선거부정을 자행하고 국민들에 대한 위협을 통해 93.48%의 투표율로 헌법이 통과되었음을 발표했다. 5월 29일자 성명은 탄쉐 장군의 서명으로 발표되었다.
5월 26일 이후 대법원장인 우 아웅 토가 이끄는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이 승인된 자신들의 성공을 강조하기 위해 투표 결과를 발표했는데 5월 19일과 24일 실시된 투표에서 2천 7백만 명 이상의 유권자 가운데 98.12%인 2천 6백만 명이상이 투표하여 92.48%에 이르는 2천 4백만 명 이상이 찬성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이클론 강타 일 주일 후 선거위원회는 5월 10일 278개 시에서 실시된 투표에서 헌법이 승인된 사실을 공표했다.
그들은 국민투표 법 23조를 근거로 투표 결과를 발표했는데 버마 국민들이나 국제 사회는 이러한 성명이 미리 준비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획기적인 찬성 결과가 나오게 된 군대의 대성공에 놀라지도 않았다.
분명히, 군사 정권은 국민들의 거부권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3월 27일, 국가평화발전평의회 의장이 했던 연설에서 헌법의 승인 여부를 모르더라도, 새 헌법에 따라 다당이 참여하는 총선을 거행하여 정권을 이양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은 자신들이 관리한 1990년 5월의 선거 결과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자신들이 뽑은 사람들을 통해 14년이나 걸려 이 일방적 헌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국민들은 군사당국과 그 하수인들이 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법과 규정을 위반한 것을 분명히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들의 발표에 놀라지 않았다.
사실 군부가 제정한 헌법은 진정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고 국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만일 국민들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십만 키야트의 벌금을 부과하게 되고 삼 년간 투옥될 것이라고 하며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적절한 방식으로 헌법을 조정하는 대신 야당 활동가들의 어떤 조직활동도 허용하지 않고 심지어 체포를 감행하면서 국민들에게 찬성표를 던지도록 요구했다.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국민 투표법을 악용함으로써 선거 부정과 절도 등으로 강제적으로 찬성표를 획득하려고 했다. 심지어는 사이클론 피해 지역에서도 죄없고 도움도 받지 못하고 버려진 국민들이 국제 지원의 대가로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버마인들과 국제사회 저항 직면할 것
현재 국민투표는 끝났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그것은 버마인들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과 다른 민주국가들이 이러한 헌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군부의 헌법은 민주주의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신군사주의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몇몇 세계 지도자들은 최근 이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구 몇몇 국가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사안을 상정하려고 애쓰고 있고 특히 미국, 영국과 프랑스는 이러한 간접적인 군부의 술책을 세계 각국에 보여줌으로써 군사정권의 국제사회에 대한 대응 태도에 인내의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태국과 같은 보호무역주의 국가에서는 평소와 같이 군사정권이 무엇을 하든간에 그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버마의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도 밝히지 않고 있다. 군부가 강제적으로 악질적으로 자신들 로드맵의 주요 단계를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많은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군사정권은 NLD와 다른 반대 단체 등 반정부 세력들과 불가피한 대응을 하게 될 것이다. NLD는 공식적으로 헌법이 포괄하지 못한 것을 거론하며 국민투표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또한 군사정권이 1990년 선출된 국회의원들과 새 헌법 초안에 대해 논의하는 데도 실패했고 또 98-5호에 대해 국회의 공식적 비판도 금지했으며 비판자에 대해서는 20년 이상의 수감을 허용한 사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5월 27일, NLD는 92% 이상의 투표자들이 국민투표에서 헌법 초안을 인정했다는 군사정권의 주장을 부인했다.
오늘날 버마 국민들의 정치, 국제적 관심사에 대한 자각은 군부에 커다란 위협과 도전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 특히 새로운 세대는 1970년대 세대와 매우 다르고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외부와 격리되어 지낼 수 없다. 모든 버마인들은 군부독재 하에서 버마가 정치, 사회, 경제적 발전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군사 체제에 어떤 방식으로든 완강히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군부의 장군들도 자신들의 권력을 영속시키려 애써 노력할 것이다. 불행히도 버마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복잡하고도 다방면에 걸친 위기상태에 빠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문명국인 국제사회는 버마 군부 체제의 인권 파괴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을 것이고 이전처럼 버마 문제를 다른 나라의 내부 문제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헌법은 군사 정권에 의해 이전에 또 한번 제정되었던 1974년의 헌법처럼 폐지되어야 한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6-23 13:41:16
- 최종편집: 2008-07-01 14: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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