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초원에서 찾은 솔롱고스 사랑
중화주의 역사의 이율배반과 형제나라의 문화와 삶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선조가 말달리던 대초원엘 갔다. 느닷없게 찾아온 건 사실이지만 기자에겐 천재일우의 기회. 황사현장을 가는 고된 취재투어라 해도 찬밥 더운 밥 가릴 때 아니다. 그렇게 첫 발을 내디딘 몽골은 생명을 꿈꾸는 세상이었다. 아직 흙먼지로 덮여 있지만 달콤한 봄비 한 줄금이면 초록세상을 피워낼 약속의 땅 말이다.
한반도에 대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동북아를 언제 ‘붉은 무덤’으로 바꿔놓을지 모를 황사 때문. 기후변화에 따른 사막화가 그 까닭이다. 지구촌의 욕망이 부른 초특급 재앙인 셈. 이를 막겠다고 나선 단체가 있으니 ‘푸른아시아’. 한반도 7배의 거대한 땅 90%가 사막화되고 있는데, 해법을 찾았단다. 특종감으론 손색이 없지만 여기선 논외다.
몽골에 초행인 기자가 서울을 떠나던 오월 어느 날이다. ‘솔롱고스’라는 표현에 매료됐다. 조금은 살가운 이 말은 ‘무지개가 피는 땅’, 한국을 일컫는다.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데려간 고려의 어여쁜 여인 때문에 생겼다나. 그들은 한반도를 5번이나 침입했지만 왕족을 도륙하고 씨를 말리지 않았다. 관행과는 좀 달랐던 게 확실하다.
몽골을 몽고(蒙古, 우매한 자들)로 기록한 건 중국이다. 그들의 선조는 흉노(흉악한 노예)라고 했다. 우리 역사도 형제 족속인 북방(몽골리안)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돌권 등을 오랑캐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도 오랑캐(동이)라 부른다. 그 걸 알면서도 우린 중화주의 역사를 떠받들고 있으니 이율배반이다.
‘형제 오랑캐’라니, 이율배반
세 시간 여 무료함을 안겨주던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징기스칸 공항에 내려앉는데 창밖을 보니 천지가 황토색이다. 검색대를 통과해 버스를 타고 울란바타르 도심으로 이동하는 20여킬로미터를 달릴 때도 나무 몇 그루 보이지 않는다. 말라붙은 풀만 간간이 눈에 띈다. 누군가 ‘몹쓸 땅’이라 그랬다. 몽골 초원을 본적이 없으니 그리 생각할밖에.
몽골은 대륙성(건조성냉대)기후를 보인다. 여름에는 38℃까지 오르지만 겨울에는 영하 40℃까지 내려간다. 구름 없는 날이 257일 정도. 지구상에서 가장 맑은 하늘을 자랑하는 곳이다. 별 관측도 최적의 나라. 연 강수량은 200~220mm. 비가 부러운 한 몽골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여름 제주도에 하루 쏟아진 강수량과 같아요.”
몽골의 4계절은 우리와 좀 다르다. 3~5월이 봄이고, 여름은 6~8월로 여행 최적기. 가을은 9월 한 달도 안 된다. 9월 하순부터 긴 겨울이 시작된다. 3~5월이 봄인데 몽골인들에겐 가장 살기 힘든 때다. 북서풍의 위력은 평균초속 2~5m.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 올 봄에도 편서풍이 만든 한 번의 모래폭풍에 5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몽골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변덕스런 사람을 봄 날씨에 비유해 ‘봄처녀 같다’고 한다. 나른한 햇볕에 새싹이 돋고 버드나무에 물오르는 철, 곱게 단장한 색시를 연상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어감이다. 가혹한 기후 때문일 테니 좀 우스꽝스럽지만 이해해줘야 할 성 싶다.
일행이 몽골을 방문한 게 5월 중순인데 척박한 땅은 아직 봄을 맞지 않았다. 초록이 사라진 초원을 본적이 없는 이들 눈엔 누렇고 황량한 몹쓸 사막으로 보일밖에. 현지인에게 물으니 “비 한 번 오면 끝없는 대지가 순식간에 초록으로 바뀐다”고 귀띔한다. 우린 초원을 보기는 틀린 것이다.
그대 꼭 ‘봄처녀’ 같아요
수도 울란바타르 역시 척박했다. 오르혼강 지류인 토라강 우안에 자리한 해발 1300미터 초원성 고원의 도시. ‘붉은 영웅’이란 이름은 황토 빛에서 유래 했다. 활불(살아있는 부처)이 건설한 라마교의 본산인데 18세기 청나라와 러시아 중계무역지로 성장했고 1911년 청에서 독립한 뒤 수도로 지정된 곳이다.
원래 몽골의 수도는 몽골고원 중앙 오르혼강 상류에 있는 카라코람이다. 징기스칸의 동생 및 아들들이 대제국을 호령하던 시절에 건설됐다. 징기스칸의 3남이자 제국의 2대 칸인 오고타이가 만들었는데 20년간 거주하다 6대 칸 쿠빌라이(원나라) 때 북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몽골의 ‘솔롱고스’ 편애는 대단해 보였다. 첫날 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맛좋은 감자탕을 즐길 수 있었다. 호텔 관계자가 우리 일행 중 한 명에게 싸게 판다고 귀띔했던 모양이다. 한국인들을 반기는 몽골인들의 마음을 알 듯 싶었다. 그 날 밤을 새하얗게 지새우고 말았지만 말이다.
울란바타르 도심 한 가운데에 가보면 안다. 1995년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했는데, 이듬해 7월 독립기념일을 기해 1km를 ‘서울의 거리’로 조성했다. 광화문 어디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한쪽 귀퉁이엔 이동식 화장실도 있는데 서울시가 기증한 것이다. 서울상징 그림도 뚜렷한데 무용지물이란다. 문화가 다른 탓일 게다.
투어 둘째 날 사막(사실은 초원) 한 가운데서 서낭당을 봤다. 몽골인에게 물으니 우보(Ovoo)란다. 곁에 앉아 거친 까치소리를 들으며 몇은 담배를 피워 무는데 기자 눈엔 어릴 적 불공드리러 가는 산 길 초입에 봤던 꼭 그 것이었다. 돌, 술병, 말 머리뼈로 수북이 쌓여있다. 흉노, 선비, 여진, 거란, 고구려 모두 같은 풍습이라니 한 핏줄임을 암시한다.
솔롱고스의 애틋함 여기저기
우보 한 가운데 꽂힌 건 버드나무. 몽골, 특히 바이칼호 주변에서 신성시 되는 나무가 둘 있는데, 버드나무와 자작나무.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도를 그렸을 정도.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부인도 ‘버들 꽃’. 버드나무 우보가 가장 많다고 한다. 바이칼은 ‘많은 불’이라는 뜻이니 화산을 뜻한다. 부여도 ‘바이’에서 유래했다나. 풀숲을 ‘쉬베’라 하는데 시베리아와 숲이 여기서 나왔다니 믿거나 말거나.
역사책인 ‘몽골비사’에 따르면, 몽골 여시조 알랑고아는 코리족의 아버지와 바르구진고아족 어머니 사이에서 탄생했다.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메카로 알려진 바이칼 호수 내 오이홍섬이 그 곳. 코리족을 고구려와 동일한 부족으로 보는 주장은 많다.
코리족의 시조로 여겨지는 11형제의 부모는 황소와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 브루카산으로 자작나무가 많은 곳이 본거지. 과거 불함산(不咸山)이라 불린 백두산을 일컫는다고. 나무꾼과 선녀 설화도 여기서 유래했단다. 최남선도 ‘불함문화권’이란 표현을 썼다. 시베리아, 몽골, 만주, 한국을 동일한 문화권으로 본 것.
투어 셋째 날엔 몽골 음악과 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테를지국립공원 안 전통 숙박지(게르촌)에서였다. 깜짝 놀란 건 ‘흐미’(인후 의미)라는 성악.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불 수 없는 창법으로 서부 알타이산과 호수지역에 전수돼 왔다고 한다.
배, 가슴, 입, 코 소리에 목에서 나는 3가지 등 총 7개 음을 내는 창법인데 가히 ‘신이 내린 소리’라 할 만큼 입이 쩍 벌어진다. 그저 휘파람 소리로 들리다 어느 순간 서너가지 소리가 섞여 난다. 고주파 소리라는 데 넓은 초원에서 멀리 신호를 전달할 때 쓰였다고 한다.
코리족, 브루카센엔 우리 혼이
몽골이 자랑하는 악기 하나를 들라면 단연 마두금(馬頭琴). 이름도 말머리현악기인데, 말의 울음소리와 발굽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있다. 길고 애절한 가락 때문에 ‘초원의 첼로’로 불린다. 또 하나는 야탁. 가야금과 비교할 때 줄이 하나 많은 것과 소나무(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든다는 게 다르다.
전통 유목 가옥인 게르(Ger)에서 지샌 하룻밤은 잊을 수 없다. ‘작은 우주’인 이 이동식 가옥은 몽골인의 철학과 삶을 오롯하게 담고 있다. 남향의 하알락(문)을 구부정하게 들어서면 천지와 고금·장유의 질서가 가지런하다. 천막 맨 위 둥그렇게 뚫린 ‘티너’는 하늘이다. 통풍, 채광을 조절한다.
임산부가 산통을 시작하면 작은 실 한 오라기를 엮어 티너 밖으로 내놓는데 생명을 하늘이 내려준다는 의미로 천지간 소통을 하는 것이다. 티너는 또 하나 해시계 역할도 한다. 그림자가 벽 어디쯤에 올 때 몇 시인 줄 몽골인들은 다 안다.
두 개의 기둥 한 가운데 난로 하나. 여긴 하늘의 정기가 내리는 곳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 누구도 그 안쪽으로 넘나들어선 안 된다. 이 난로로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을 이겨낸다. 연료는 소·말 똥. 잘 삭혀 말려야 냄새가 안 난다. 이런 생태적 삶이 또 있을까 싶다.
하알락을 들어서 정 중앙 맞은편은 조상을 모신 곳. 왼쪽은 남성 영역. 가장의 침대가 있다. 오른쪽은 여성 영역. 부엌과 나머지 가족들의 잠자리가 있다. 그 크기는 일반적으로 17평 내외. 벽과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은 뒤 에스기(양털로 만든 천막)를 치기까지 3시간이면 된다.
게르엔 우주질서가 오롯하게
게르 입구에 ‘천마’ 깃발이라도 하나 세우면 금상첨화. 천마가 행운을 가져 온다는 믿음 때문. 그러고 보니 몽골인들의 말 자랑은 정말이지 끝이 없다. 많은 민요, 시의 소재가 말이다. 사람이 죽은 뒤 말이 없으면 하늘나라를 못 간다고 생각해 말과 함께 매장하는 ‘순장’도 그 때문. 말이 죽으면 그 머리를 우부(서낭당)에 안치하는 것도 경의를 표하는 행위.
몽골 말의 가장 큰 장점은 하루 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 지구력. 추위에 강한 것도 자랑거리. 체구는 작으나 머리통은 큰 게 특징. 이 말 때문에 징기스칸은 유일무이한 대 제국을 건설했다. 온 종일 달리며 정복 전쟁을 할 수 있었기 때문. 몽골기병의 또 하나 자랑은 칼. 찌르는 게 아닌 달리면서 베는 모양이어서 기동성을 배가시켰다.
몽골 유목민들은 이 게르를 가지고 수천마리의 가축 떼를 몰고 매년 2~15회에 걸쳐 초지를 따라 10~150km를 이동하며 살아 왔다. 가축의 대부분은 염소와 양. 4~5월 융모로 캐시미어라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염소가 인기 최고. 그 수도 1200만 마리. 양은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육식으로 1100만마리. 소와 말이 각각 200만 마리. 낙타가 25만 마리 정도 된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1995년 송년특집호에서 ‘최근 1천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징기스칸을 선정했다. 인터넷이 생기기 700년이나 앞서 국제 통신망을 건설했다는 게 최대 공적이란다. 역창제를 일컬음이다. 40~50리마다 말이 쉬어갈 수 있게 만든 통신체계. 정보를 급보에서부터 천천히 전해도 되는 것까지 4가지로 나눠 전달했단다. 실제 아라비아 물건을 고려까지 안전하게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고.
역사가 전해주는 편린으로도 몽골리안의 후예들이 지구촌 어디에 사는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북방계는 몽골, 티벳서부, 만주, 퉁구스, 신장위구르, 카자흐스탄, 터키, 한국, 일본, 에스키모, 북미인디언, 남미 인디오까지 그 핏줄을 전했다. 남방계도 중국, 필리핀, 미얀마를 거쳐 인도차이나까지 뻗어있다. 황인종 92%가 가진 몽골반점이 그 증거 중 하나다.
‘몽골반점’에서 유추한 뿌리는
역사문화의 뿌리를 찾아 떠난 여행은 기자에게 남달랐다. 환경재앙 탐사보도 기회를 빌었지만 말이다. 몽골의 사막화는 동북아인 모두의 과제다. 이웃의 고통을 나누고 지구촌 환경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게 인류보편의 가치이니까. 여기에 조금 특별한 이유를 하나 더 대라면 ‘조금 더 친한 이웃’이라고나 할까.
몽골은 1717년 청나라에 완전 복속됐다가 1921년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흐바타르가 조직한 몽골 인민혁명당의 노력으로 독립했다. 3년 뒤 헌법을 제정, 세계 두 번째 사회주의 나라를 선포했다. 하지만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에 따른 ‘몽골판 페레스트로이카’를 거쳐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자유공화국이 된 나라다.
1990년 첫 자유총선을 실시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이듬해 새 헌법을 제정했고 중립·비동맹 국가를 선언, 오늘에 이르니 자유이념이나 시장경제로 보면 사실상 신생국이라 할 수 있다. 20년도 안된 체제인 셈인데, 인민혁명당과 민주연합당이 견제·균형을 이루며 정치를 차근차근 발전시키고 있다. 1인당 GNP를 따지면 1500달러에 불과하지만 이제 경제·사회적 개혁·개방을 실험하고 있으니 머잖아 크게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몽골이 60여년 동지로 지내온 러시아나 수천년 공방을 거듭해온 중국을 제쳐두고 한반도인들과 친하게 지내겠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우리의 물건을 팔아주고, 우리 문화를 아껴주면서 말이다. 생면부지라도 이 정도면 달가울 텐데, 핏줄까지 남다르지 않으니 고마운 일 아니겠나. 당연히 멋진 이웃이어야 한다. 괜찮은 교사가 돼 주거나.
한반도에 대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동북아를 언제 ‘붉은 무덤’으로 바꿔놓을지 모를 황사 때문. 기후변화에 따른 사막화가 그 까닭이다. 지구촌의 욕망이 부른 초특급 재앙인 셈. 이를 막겠다고 나선 단체가 있으니 ‘푸른아시아’. 한반도 7배의 거대한 땅 90%가 사막화되고 있는데, 해법을 찾았단다. 특종감으론 손색이 없지만 여기선 논외다.
몽골에 초행인 기자가 서울을 떠나던 오월 어느 날이다. ‘솔롱고스’라는 표현에 매료됐다. 조금은 살가운 이 말은 ‘무지개가 피는 땅’, 한국을 일컫는다.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데려간 고려의 어여쁜 여인 때문에 생겼다나. 그들은 한반도를 5번이나 침입했지만 왕족을 도륙하고 씨를 말리지 않았다. 관행과는 좀 달랐던 게 확실하다.
몽골을 몽고(蒙古, 우매한 자들)로 기록한 건 중국이다. 그들의 선조는 흉노(흉악한 노예)라고 했다. 우리 역사도 형제 족속인 북방(몽골리안)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돌권 등을 오랑캐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도 오랑캐(동이)라 부른다. 그 걸 알면서도 우린 중화주의 역사를 떠받들고 있으니 이율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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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대초원에서 찾은 솔롱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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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
‘형제 오랑캐’라니, 이율배반
세 시간 여 무료함을 안겨주던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징기스칸 공항에 내려앉는데 창밖을 보니 천지가 황토색이다. 검색대를 통과해 버스를 타고 울란바타르 도심으로 이동하는 20여킬로미터를 달릴 때도 나무 몇 그루 보이지 않는다. 말라붙은 풀만 간간이 눈에 띈다. 누군가 ‘몹쓸 땅’이라 그랬다. 몽골 초원을 본적이 없으니 그리 생각할밖에.
몽골은 대륙성(건조성냉대)기후를 보인다. 여름에는 38℃까지 오르지만 겨울에는 영하 40℃까지 내려간다. 구름 없는 날이 257일 정도. 지구상에서 가장 맑은 하늘을 자랑하는 곳이다. 별 관측도 최적의 나라. 연 강수량은 200~220mm. 비가 부러운 한 몽골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여름 제주도에 하루 쏟아진 강수량과 같아요.”
몽골의 4계절은 우리와 좀 다르다. 3~5월이 봄이고, 여름은 6~8월로 여행 최적기. 가을은 9월 한 달도 안 된다. 9월 하순부터 긴 겨울이 시작된다. 3~5월이 봄인데 몽골인들에겐 가장 살기 힘든 때다. 북서풍의 위력은 평균초속 2~5m.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 올 봄에도 편서풍이 만든 한 번의 모래폭풍에 5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몽골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변덕스런 사람을 봄 날씨에 비유해 ‘봄처녀 같다’고 한다. 나른한 햇볕에 새싹이 돋고 버드나무에 물오르는 철, 곱게 단장한 색시를 연상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어감이다. 가혹한 기후 때문일 테니 좀 우스꽝스럽지만 이해해줘야 할 성 싶다.
일행이 몽골을 방문한 게 5월 중순인데 척박한 땅은 아직 봄을 맞지 않았다. 초록이 사라진 초원을 본적이 없는 이들 눈엔 누렇고 황량한 몹쓸 사막으로 보일밖에. 현지인에게 물으니 “비 한 번 오면 끝없는 대지가 순식간에 초록으로 바뀐다”고 귀띔한다. 우린 초원을 보기는 틀린 것이다.
그대 꼭 ‘봄처녀’ 같아요
수도 울란바타르 역시 척박했다. 오르혼강 지류인 토라강 우안에 자리한 해발 1300미터 초원성 고원의 도시. ‘붉은 영웅’이란 이름은 황토 빛에서 유래 했다. 활불(살아있는 부처)이 건설한 라마교의 본산인데 18세기 청나라와 러시아 중계무역지로 성장했고 1911년 청에서 독립한 뒤 수도로 지정된 곳이다.
원래 몽골의 수도는 몽골고원 중앙 오르혼강 상류에 있는 카라코람이다. 징기스칸의 동생 및 아들들이 대제국을 호령하던 시절에 건설됐다. 징기스칸의 3남이자 제국의 2대 칸인 오고타이가 만들었는데 20년간 거주하다 6대 칸 쿠빌라이(원나라) 때 북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몽골의 ‘솔롱고스’ 편애는 대단해 보였다. 첫날 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맛좋은 감자탕을 즐길 수 있었다. 호텔 관계자가 우리 일행 중 한 명에게 싸게 판다고 귀띔했던 모양이다. 한국인들을 반기는 몽골인들의 마음을 알 듯 싶었다. 그 날 밤을 새하얗게 지새우고 말았지만 말이다.
울란바타르 도심 한 가운데에 가보면 안다. 1995년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했는데, 이듬해 7월 독립기념일을 기해 1km를 ‘서울의 거리’로 조성했다. 광화문 어디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한쪽 귀퉁이엔 이동식 화장실도 있는데 서울시가 기증한 것이다. 서울상징 그림도 뚜렷한데 무용지물이란다. 문화가 다른 탓일 게다.
투어 둘째 날 사막(사실은 초원) 한 가운데서 서낭당을 봤다. 몽골인에게 물으니 우보(Ovoo)란다. 곁에 앉아 거친 까치소리를 들으며 몇은 담배를 피워 무는데 기자 눈엔 어릴 적 불공드리러 가는 산 길 초입에 봤던 꼭 그 것이었다. 돌, 술병, 말 머리뼈로 수북이 쌓여있다. 흉노, 선비, 여진, 거란, 고구려 모두 같은 풍습이라니 한 핏줄임을 암시한다.
솔롱고스의 애틋함 여기저기
우보 한 가운데 꽂힌 건 버드나무. 몽골, 특히 바이칼호 주변에서 신성시 되는 나무가 둘 있는데, 버드나무와 자작나무.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도를 그렸을 정도.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부인도 ‘버들 꽃’. 버드나무 우보가 가장 많다고 한다. 바이칼은 ‘많은 불’이라는 뜻이니 화산을 뜻한다. 부여도 ‘바이’에서 유래했다나. 풀숲을 ‘쉬베’라 하는데 시베리아와 숲이 여기서 나왔다니 믿거나 말거나.
역사책인 ‘몽골비사’에 따르면, 몽골 여시조 알랑고아는 코리족의 아버지와 바르구진고아족 어머니 사이에서 탄생했다.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메카로 알려진 바이칼 호수 내 오이홍섬이 그 곳. 코리족을 고구려와 동일한 부족으로 보는 주장은 많다.
코리족의 시조로 여겨지는 11형제의 부모는 황소와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 브루카산으로 자작나무가 많은 곳이 본거지. 과거 불함산(不咸山)이라 불린 백두산을 일컫는다고. 나무꾼과 선녀 설화도 여기서 유래했단다. 최남선도 ‘불함문화권’이란 표현을 썼다. 시베리아, 몽골, 만주, 한국을 동일한 문화권으로 본 것.
투어 셋째 날엔 몽골 음악과 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테를지국립공원 안 전통 숙박지(게르촌)에서였다. 깜짝 놀란 건 ‘흐미’(인후 의미)라는 성악.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불 수 없는 창법으로 서부 알타이산과 호수지역에 전수돼 왔다고 한다.
배, 가슴, 입, 코 소리에 목에서 나는 3가지 등 총 7개 음을 내는 창법인데 가히 ‘신이 내린 소리’라 할 만큼 입이 쩍 벌어진다. 그저 휘파람 소리로 들리다 어느 순간 서너가지 소리가 섞여 난다. 고주파 소리라는 데 넓은 초원에서 멀리 신호를 전달할 때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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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초원의 말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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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
코리족, 브루카센엔 우리 혼이
몽골이 자랑하는 악기 하나를 들라면 단연 마두금(馬頭琴). 이름도 말머리현악기인데, 말의 울음소리와 발굽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있다. 길고 애절한 가락 때문에 ‘초원의 첼로’로 불린다. 또 하나는 야탁. 가야금과 비교할 때 줄이 하나 많은 것과 소나무(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든다는 게 다르다.
전통 유목 가옥인 게르(Ger)에서 지샌 하룻밤은 잊을 수 없다. ‘작은 우주’인 이 이동식 가옥은 몽골인의 철학과 삶을 오롯하게 담고 있다. 남향의 하알락(문)을 구부정하게 들어서면 천지와 고금·장유의 질서가 가지런하다. 천막 맨 위 둥그렇게 뚫린 ‘티너’는 하늘이다. 통풍, 채광을 조절한다.
임산부가 산통을 시작하면 작은 실 한 오라기를 엮어 티너 밖으로 내놓는데 생명을 하늘이 내려준다는 의미로 천지간 소통을 하는 것이다. 티너는 또 하나 해시계 역할도 한다. 그림자가 벽 어디쯤에 올 때 몇 시인 줄 몽골인들은 다 안다.
두 개의 기둥 한 가운데 난로 하나. 여긴 하늘의 정기가 내리는 곳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 누구도 그 안쪽으로 넘나들어선 안 된다. 이 난로로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을 이겨낸다. 연료는 소·말 똥. 잘 삭혀 말려야 냄새가 안 난다. 이런 생태적 삶이 또 있을까 싶다.
하알락을 들어서 정 중앙 맞은편은 조상을 모신 곳. 왼쪽은 남성 영역. 가장의 침대가 있다. 오른쪽은 여성 영역. 부엌과 나머지 가족들의 잠자리가 있다. 그 크기는 일반적으로 17평 내외. 벽과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은 뒤 에스기(양털로 만든 천막)를 치기까지 3시간이면 된다.
게르엔 우주질서가 오롯하게
게르 입구에 ‘천마’ 깃발이라도 하나 세우면 금상첨화. 천마가 행운을 가져 온다는 믿음 때문. 그러고 보니 몽골인들의 말 자랑은 정말이지 끝이 없다. 많은 민요, 시의 소재가 말이다. 사람이 죽은 뒤 말이 없으면 하늘나라를 못 간다고 생각해 말과 함께 매장하는 ‘순장’도 그 때문. 말이 죽으면 그 머리를 우부(서낭당)에 안치하는 것도 경의를 표하는 행위.
몽골 말의 가장 큰 장점은 하루 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 지구력. 추위에 강한 것도 자랑거리. 체구는 작으나 머리통은 큰 게 특징. 이 말 때문에 징기스칸은 유일무이한 대 제국을 건설했다. 온 종일 달리며 정복 전쟁을 할 수 있었기 때문. 몽골기병의 또 하나 자랑은 칼. 찌르는 게 아닌 달리면서 베는 모양이어서 기동성을 배가시켰다.
몽골 유목민들은 이 게르를 가지고 수천마리의 가축 떼를 몰고 매년 2~15회에 걸쳐 초지를 따라 10~150km를 이동하며 살아 왔다. 가축의 대부분은 염소와 양. 4~5월 융모로 캐시미어라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염소가 인기 최고. 그 수도 1200만 마리. 양은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육식으로 1100만마리. 소와 말이 각각 200만 마리. 낙타가 25만 마리 정도 된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1995년 송년특집호에서 ‘최근 1천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징기스칸을 선정했다. 인터넷이 생기기 700년이나 앞서 국제 통신망을 건설했다는 게 최대 공적이란다. 역창제를 일컬음이다. 40~50리마다 말이 쉬어갈 수 있게 만든 통신체계. 정보를 급보에서부터 천천히 전해도 되는 것까지 4가지로 나눠 전달했단다. 실제 아라비아 물건을 고려까지 안전하게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고.
역사가 전해주는 편린으로도 몽골리안의 후예들이 지구촌 어디에 사는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북방계는 몽골, 티벳서부, 만주, 퉁구스, 신장위구르, 카자흐스탄, 터키, 한국, 일본, 에스키모, 북미인디언, 남미 인디오까지 그 핏줄을 전했다. 남방계도 중국, 필리핀, 미얀마를 거쳐 인도차이나까지 뻗어있다. 황인종 92%가 가진 몽골반점이 그 증거 중 하나다.
‘몽골반점’에서 유추한 뿌리는
역사문화의 뿌리를 찾아 떠난 여행은 기자에게 남달랐다. 환경재앙 탐사보도 기회를 빌었지만 말이다. 몽골의 사막화는 동북아인 모두의 과제다. 이웃의 고통을 나누고 지구촌 환경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게 인류보편의 가치이니까. 여기에 조금 특별한 이유를 하나 더 대라면 ‘조금 더 친한 이웃’이라고나 할까.
몽골은 1717년 청나라에 완전 복속됐다가 1921년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흐바타르가 조직한 몽골 인민혁명당의 노력으로 독립했다. 3년 뒤 헌법을 제정, 세계 두 번째 사회주의 나라를 선포했다. 하지만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에 따른 ‘몽골판 페레스트로이카’를 거쳐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자유공화국이 된 나라다.
1990년 첫 자유총선을 실시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이듬해 새 헌법을 제정했고 중립·비동맹 국가를 선언, 오늘에 이르니 자유이념이나 시장경제로 보면 사실상 신생국이라 할 수 있다. 20년도 안된 체제인 셈인데, 인민혁명당과 민주연합당이 견제·균형을 이루며 정치를 차근차근 발전시키고 있다. 1인당 GNP를 따지면 1500달러에 불과하지만 이제 경제·사회적 개혁·개방을 실험하고 있으니 머잖아 크게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몽골이 60여년 동지로 지내온 러시아나 수천년 공방을 거듭해온 중국을 제쳐두고 한반도인들과 친하게 지내겠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우리의 물건을 팔아주고, 우리 문화를 아껴주면서 말이다. 생면부지라도 이 정도면 달가울 텐데, 핏줄까지 남다르지 않으니 고마운 일 아니겠나. 당연히 멋진 이웃이어야 한다. 괜찮은 교사가 돼 주거나.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6-23 13:42:06
- 최종편집: 2008-07-01 14: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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