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에티오피아 그리고 ‘미국’
잊혀져 가던 소말리아라는 나라가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국가로 다시 다가왔다. 이는 우리나라 선원들이 소말리아 해적들에 나포되어 수개월간 억류되어 있다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사건 때문이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소말리아 반도를 구성하고 있다. ‘아프리카 뿔’ 지역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 지부티, 케냐와 접해 있고, 북쪽과 동쪽은 인도양에 접해 있다. 인구는 약 9백만 명 내외로 장기간의 내전으로 많은 국민들이 인근 국가들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늘 소말리아가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아프리카대륙 내에서는 얼마 남아있지 않은 분쟁국가로서 아프리카연합 평화유지군이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늘 감시의 눈을 보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2006년 크리스마스 날에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공격은 아프리카 뿔 지역에서 새로운 국제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 전쟁은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 이슬람 군벌인 소말리아 이슬람 법정연맹(Somalia's Islamic Courts Union:SICU)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지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이처럼 소말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명분은 무엇보다도 소말리아 안정을 통한 자국 안보라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에 과격 이슬람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침공은 양국간의 오랜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인데 이는 에티오피아 오가덴 지역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소말리족을 중심으로 한 반군과의 대치관계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가 오래 전부터 이들 반군을 지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에티오피아는 지난 1977년 소말리아로부터 침공을 당한 경험이 있다. 당시 소말리아 정부는 오가덴 등 에티오피아 영토이지만 소말리아족이 사는 곳을 통합하겠다는 ‘대(大)소말리아’를 내세우며 침공했다.
오랜 앙금의 씨앗
특히 현재 오가덴 지역에서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맞서는 가장 큰 반군 조직은 오가덴민족해방전선(ONLF)으로 1977~1978년 치열하게 이어진 소말리아-에티오피아 국경분쟁(오가덴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부소말리아해방전선(WSLF)을 필두로 한 오가덴 지역(현 소말리주 일대) 무장세력은 소말리아군과 함께 에티오피아군에 맞서 독립을 위해 싸웠다. 전쟁 전까지 소말리아를 지원했던 러시아는 에티오피아군을, 에티오피아를 지원했던 미국은 소말리아군을 각각 물밑에서 지원했다. 결국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 군대를 물리쳤지만 오늘날에는 다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소말리아를 공격하고 있으니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라는 명언이 새삼스럽지 않다.
또한 오랜 기독교 역사를 자랑하는 에티오피아이지만 그동안 이슬람 신도가 꾸준히 늘어나 이제는 기독교 신도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소말리아의 이슬람 급진정부가 에티오피아의 이슬람교도들을 자극할 가능성도 에티오피아 정부는 염려하고 있다.
침공 초기, 단기간 내에 이슬람법정연맹 축출에 성공하면서 기세를 올린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는 ‘조기 철군’을 공언했지만, 반군들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인해 아직까지 소말리아에서 철군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기독교가 우세한 에티오피아가 턱 밑에 이슬람근본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고, 또한 최근 소말리아가 알카에다의 본거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발언은 이들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미국의 생각과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에티오피아가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소말리아와의 전쟁을 치를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에티오피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네 나라 중 케냐를 제외한 수단, 에리트리아, 소말리아 등이 모두 이슬람 국가들로 에티오피아는 이들과 많은 전쟁을 벌였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80년대 말까지 내전으로 인한 전쟁과 1990년대 후반까지 에리트리아와의 국경전쟁 등의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소말리아 반군들은 처음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이미 SICU는 에티오피아의 공격으로 중부와 남부의 주요 전략적인 도시들(Bur Hakaba, Dinsor, Daynunay)을 포기하고 후퇴하였다. 모가디슈의 이슬람정부는 군사적 전술변화를 위해 이들 도시들을 포기했다고 발표하였다.
이번 전쟁으로 그렇지 않아도 기아와 자연재해로 피폐해진 소말리아 국민들은 또다시 피난생활을 해야 하고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이 기아에 직면하게 되어 이래저래 힘없는 백성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기름 있는 곳에는 미국도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 과도정부를 도와 반군들을 토벌한다는 명분하에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많은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전쟁도 결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치러지는 전쟁이라고 믿고 있다. 즉 미국은 소말리아에서 알카에다 잔당들을 제거하는 것과 지정학적으로는 소말리아에 친미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홍해의 입구를 확보하여 안정적인 석유자원 수송로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소말리아에서 석유매장을 둘러싸고 이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시작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메이저기업들은 소말리아 푼틀란드 지역에서 90년대 이전부터 진출하여 석유 시추작업을 해 왔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석유자원은 이라크 사태에 이어 또 한 번 미국의 석유확보를 위한 전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군대가 소말리아를 침공할 당시에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는 이슬람법정연맹의 통제 하에 있었다. 이슬람법정연맹은 소말리아의 이슬람법정과 사업가, 지역 관리들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조직으로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치안 유지와 식량, 교육 등 각종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CIA의 지원을 받는 군벌들에 맞서 싸우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에티오피아 군대가 침략하기 6개월 전부터는 이슬람법정연맹이 수도 모가디슈를 통제하면서 소말리아 많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였다. 하지만 이슬람법정연맹이 어떤 일을 하고, 대중의 지지를 얼마나 얻고 있느냐는 에티오피아나 에티오피아를 지원한 미국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에티오피아는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무력으로 이슬람법정연맹을 모가디슈에서 몰아내고 친 에티오피아 성향의 임시정부가 정권을 잡도록 지원하였다.
미국은 15년 전에도 소말리아를 굶주림에서 해방시키겠다는 명분을 들어 군대를 파견했으나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소말리아 반군들에 의해 미군 시체가 길거리에서 끌려 다니는 장면이 전 세계에 방영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점령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동시에 소말리아에서 직접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에티오피아에 대한 군사적 지원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는 직접적인 군사력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직접적인 지상전에는 개입하고 있지 않지만 2007년부터 지금까지 소말리아는 미국으로부터 최소 5번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특히 2008년 5월 1일 미국이 소말리아 두사마렙 지역으로 쏘아올린 4개의 크루즈 미사일은 소말리아 과도정부와 소말리아자유회복연맹의 평화회담을 앞두고 공격한 것으로 사망한 30여명의 소말리아 인 중에는 이슬람법정연맹의 무장조직이었던 알 사바드의 전 간부인 에이든 하시 이로우가 포함되어 있었다.
알 사바드는 2007년에 이슬람법정연대에서 분리되어 나와 에티오피아 군대와 소말리아 정부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테러조직 명단에 올라있다. 미국은 공격이 있은 후에 자신들이 목표로 했던 테러리스트가 사망하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격은 소말리아에서 평화회담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다. 알 사바드는 즉시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비난하면서 보복의 의사를 나타냈고,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하여 알 사바드와 정부군과 에티오피아 군대의 전투가 더욱 치열해졌다.
또한 모가디슈에서 6월 8일에도 에티오피아가 지원하는 소말리아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들 사이의 대규모 전투로 20명이 사망하였다. 이번 전투는 소말리아-에티오피아 연합군이 소말리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바카라 시장의 주요 도로를 따라 순시하던 이른 아침에 반군들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이 전투로 인해 시장 인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사상자들도 다수 발생하였는데 약 44명의 시민들이 부상하였으며 이들 중 일부는 수술 중 사망자도 발생하였다. 특히 부상자들 중에는 12명의 여성과 6명의 어린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부는 노인들도 있었다.
아프리카의 평화는 언제 오는가
6월 10일에는 소말리아 과도정부와 반군 연합체가 평화협정에 서명했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협정문의 내용에는 향후 30일 안에 모든 무력분쟁의 종식, 다음 단계 이행 전 90일 동안의 휴전, 120일 안에 에티오피아군의 철수가 포함됐다. 과도정부를 도와 반군을 공격하던 인접국 에티오피아군은 협상 타결의 큰 걸림돌이었다. 반군은 에티오피아군의 철수 없이는 협상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해 왔고, 정부는 협상 재개 없이 에티오피아군의 철수는 없다고 맞섰는데 이날 대타협을 봤다.
하지만 이 협정은 일부 반군단체들이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소말리아에서 완전한 평화가 오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정부 군벌 가운데 이슬람법정연맹과 같은 강경단체는 협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투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역시 이슬람법정연맹을 테러단체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단체와는 협상의 의지가 없다. 특히 이슬람법정연맹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에이스는 미국과 유엔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평화협정의 체결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유엔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유엔안보리도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소말리아에 아프리카 연합을 대체하는 유엔평화유지군 파견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과거 1995년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이 실패로 끝났지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파병이 좋을 결실을 거두길 희망한다.
이는 소말리아가 1991년 바레 전 독재정권 붕괴 이후 18년째 내전 상황이 이어지면서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생겨났고 또한 현재 전 세계적인 곡물가 상승과 가뭄이 겹치면서 350만 명이 외부 원조에 목숨을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높여있어 그 어느 때 보다 소말리아사태가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소말리아 반도를 구성하고 있다. ‘아프리카 뿔’ 지역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 지부티, 케냐와 접해 있고, 북쪽과 동쪽은 인도양에 접해 있다. 인구는 약 9백만 명 내외로 장기간의 내전으로 많은 국민들이 인근 국가들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늘 소말리아가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아프리카대륙 내에서는 얼마 남아있지 않은 분쟁국가로서 아프리카연합 평화유지군이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늘 감시의 눈을 보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2006년 크리스마스 날에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공격은 아프리카 뿔 지역에서 새로운 국제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 전쟁은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 이슬람 군벌인 소말리아 이슬람 법정연맹(Somalia's Islamic Courts Union:SICU)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지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이처럼 소말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명분은 무엇보다도 소말리아 안정을 통한 자국 안보라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에 과격 이슬람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침공은 양국간의 오랜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인데 이는 에티오피아 오가덴 지역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소말리족을 중심으로 한 반군과의 대치관계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가 오래 전부터 이들 반군을 지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에티오피아는 지난 1977년 소말리아로부터 침공을 당한 경험이 있다. 당시 소말리아 정부는 오가덴 등 에티오피아 영토이지만 소말리아족이 사는 곳을 통합하겠다는 ‘대(大)소말리아’를 내세우며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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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1일 소말리아 두사마레브 지역 사람들이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위를 지나고 있다. 이번 폭격으로 이슬람주의 반군 1명과 주민 30여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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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
오랜 앙금의 씨앗
특히 현재 오가덴 지역에서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맞서는 가장 큰 반군 조직은 오가덴민족해방전선(ONLF)으로 1977~1978년 치열하게 이어진 소말리아-에티오피아 국경분쟁(오가덴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부소말리아해방전선(WSLF)을 필두로 한 오가덴 지역(현 소말리주 일대) 무장세력은 소말리아군과 함께 에티오피아군에 맞서 독립을 위해 싸웠다. 전쟁 전까지 소말리아를 지원했던 러시아는 에티오피아군을, 에티오피아를 지원했던 미국은 소말리아군을 각각 물밑에서 지원했다. 결국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 군대를 물리쳤지만 오늘날에는 다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소말리아를 공격하고 있으니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라는 명언이 새삼스럽지 않다.
또한 오랜 기독교 역사를 자랑하는 에티오피아이지만 그동안 이슬람 신도가 꾸준히 늘어나 이제는 기독교 신도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소말리아의 이슬람 급진정부가 에티오피아의 이슬람교도들을 자극할 가능성도 에티오피아 정부는 염려하고 있다.
침공 초기, 단기간 내에 이슬람법정연맹 축출에 성공하면서 기세를 올린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는 ‘조기 철군’을 공언했지만, 반군들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인해 아직까지 소말리아에서 철군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기독교가 우세한 에티오피아가 턱 밑에 이슬람근본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고, 또한 최근 소말리아가 알카에다의 본거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발언은 이들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미국의 생각과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에티오피아가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소말리아와의 전쟁을 치를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에티오피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네 나라 중 케냐를 제외한 수단, 에리트리아, 소말리아 등이 모두 이슬람 국가들로 에티오피아는 이들과 많은 전쟁을 벌였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80년대 말까지 내전으로 인한 전쟁과 1990년대 후반까지 에리트리아와의 국경전쟁 등의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소말리아 반군들은 처음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이미 SICU는 에티오피아의 공격으로 중부와 남부의 주요 전략적인 도시들(Bur Hakaba, Dinsor, Daynunay)을 포기하고 후퇴하였다. 모가디슈의 이슬람정부는 군사적 전술변화를 위해 이들 도시들을 포기했다고 발표하였다.
이번 전쟁으로 그렇지 않아도 기아와 자연재해로 피폐해진 소말리아 국민들은 또다시 피난생활을 해야 하고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이 기아에 직면하게 되어 이래저래 힘없는 백성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기름 있는 곳에는 미국도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 과도정부를 도와 반군들을 토벌한다는 명분하에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많은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전쟁도 결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치러지는 전쟁이라고 믿고 있다. 즉 미국은 소말리아에서 알카에다 잔당들을 제거하는 것과 지정학적으로는 소말리아에 친미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홍해의 입구를 확보하여 안정적인 석유자원 수송로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소말리아에서 석유매장을 둘러싸고 이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시작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메이저기업들은 소말리아 푼틀란드 지역에서 90년대 이전부터 진출하여 석유 시추작업을 해 왔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석유자원은 이라크 사태에 이어 또 한 번 미국의 석유확보를 위한 전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군대가 소말리아를 침공할 당시에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는 이슬람법정연맹의 통제 하에 있었다. 이슬람법정연맹은 소말리아의 이슬람법정과 사업가, 지역 관리들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조직으로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치안 유지와 식량, 교육 등 각종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CIA의 지원을 받는 군벌들에 맞서 싸우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에티오피아 군대가 침략하기 6개월 전부터는 이슬람법정연맹이 수도 모가디슈를 통제하면서 소말리아 많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였다. 하지만 이슬람법정연맹이 어떤 일을 하고, 대중의 지지를 얼마나 얻고 있느냐는 에티오피아나 에티오피아를 지원한 미국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에티오피아는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무력으로 이슬람법정연맹을 모가디슈에서 몰아내고 친 에티오피아 성향의 임시정부가 정권을 잡도록 지원하였다.
미국은 15년 전에도 소말리아를 굶주림에서 해방시키겠다는 명분을 들어 군대를 파견했으나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소말리아 반군들에 의해 미군 시체가 길거리에서 끌려 다니는 장면이 전 세계에 방영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점령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동시에 소말리아에서 직접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에티오피아에 대한 군사적 지원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는 직접적인 군사력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직접적인 지상전에는 개입하고 있지 않지만 2007년부터 지금까지 소말리아는 미국으로부터 최소 5번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특히 2008년 5월 1일 미국이 소말리아 두사마렙 지역으로 쏘아올린 4개의 크루즈 미사일은 소말리아 과도정부와 소말리아자유회복연맹의 평화회담을 앞두고 공격한 것으로 사망한 30여명의 소말리아 인 중에는 이슬람법정연맹의 무장조직이었던 알 사바드의 전 간부인 에이든 하시 이로우가 포함되어 있었다.
알 사바드는 2007년에 이슬람법정연대에서 분리되어 나와 에티오피아 군대와 소말리아 정부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테러조직 명단에 올라있다. 미국은 공격이 있은 후에 자신들이 목표로 했던 테러리스트가 사망하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격은 소말리아에서 평화회담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다. 알 사바드는 즉시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비난하면서 보복의 의사를 나타냈고,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하여 알 사바드와 정부군과 에티오피아 군대의 전투가 더욱 치열해졌다.
또한 모가디슈에서 6월 8일에도 에티오피아가 지원하는 소말리아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들 사이의 대규모 전투로 20명이 사망하였다. 이번 전투는 소말리아-에티오피아 연합군이 소말리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바카라 시장의 주요 도로를 따라 순시하던 이른 아침에 반군들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이 전투로 인해 시장 인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사상자들도 다수 발생하였는데 약 44명의 시민들이 부상하였으며 이들 중 일부는 수술 중 사망자도 발생하였다. 특히 부상자들 중에는 12명의 여성과 6명의 어린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부는 노인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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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의 이슬람 전사들이 ‘조와’시를 점령했다. 이 지역은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와는 9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이슬람 반군 측과 친에티오피아 과도정부군 사이에 점령전이 매우 치열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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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
아프리카의 평화는 언제 오는가
6월 10일에는 소말리아 과도정부와 반군 연합체가 평화협정에 서명했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협정문의 내용에는 향후 30일 안에 모든 무력분쟁의 종식, 다음 단계 이행 전 90일 동안의 휴전, 120일 안에 에티오피아군의 철수가 포함됐다. 과도정부를 도와 반군을 공격하던 인접국 에티오피아군은 협상 타결의 큰 걸림돌이었다. 반군은 에티오피아군의 철수 없이는 협상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해 왔고, 정부는 협상 재개 없이 에티오피아군의 철수는 없다고 맞섰는데 이날 대타협을 봤다.
하지만 이 협정은 일부 반군단체들이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소말리아에서 완전한 평화가 오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정부 군벌 가운데 이슬람법정연맹과 같은 강경단체는 협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투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역시 이슬람법정연맹을 테러단체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단체와는 협상의 의지가 없다. 특히 이슬람법정연맹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에이스는 미국과 유엔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평화협정의 체결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유엔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유엔안보리도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소말리아에 아프리카 연합을 대체하는 유엔평화유지군 파견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과거 1995년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이 실패로 끝났지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파병이 좋을 결실을 거두길 희망한다.
이는 소말리아가 1991년 바레 전 독재정권 붕괴 이후 18년째 내전 상황이 이어지면서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생겨났고 또한 현재 전 세계적인 곡물가 상승과 가뭄이 겹치면서 350만 명이 외부 원조에 목숨을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높여있어 그 어느 때 보다 소말리아사태가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6-23 13:43:37
- 최종편집: 2008-07-01 14: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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