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산업화 정책이 낳은 비운아 '중소 IT기업'

출범 100일, 중소 IT기업 정책은 아직도 ‘실종’

이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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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5일 새롭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과거 ‘국민의정부’, ‘참여정부’가 고수하던 IT산업 관련 정책을 ‘친산업화’로 바꿨다. ‘IT원천기술’을 육성하기보다는 기존 산업에 IT기술을 접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 이는 IT산업을 독립적인 정책 과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통산업 부문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간주한 것이어서 분명한 ‘차별성’을 띈다.
이를 위해 정부는 IT정책을 총괄해왔던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과거 산업자원부를 지식경제부로 기능을 흡수해 축소했으며, IT관련 산하단체장들도 IT전문 인력이 아니라 기업형 CEO들로 교체했다.

중소 IT기업

대기업 ‘오케이’, 중기벤처기업 ‘나 몰라라’
경제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IT친산업화 정책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IT원천기술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산업과 IT를 결합해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더 많은 실익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소 IT기업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이명박 정부가 중기벤처기업 지원에 소홀하다고 느꼈던 까닭이다. 이들은 대통령직 인수위가 중소 IT기업들이 건의했던 사항들은 조직개편 과정에 반영하지 않은데다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고 IT산업 발전을 주도했던 정보통신부를 분산통합 시킨 것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을 돌아다니면서 중기벤처기업 장려를 약속했다. 하지만 출범 직후 모습은 전혀 달렸다. 산업과 IT, 에너지 등 관련 산업의 연구개발에 4조1천억원을 투입하고, IT융합 분야 육성을 위해 오는 2012년까지 1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비전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중소 IT기업들을 대하는 인식이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 것이다. 출자총액제폐지, 금산분리원칙 완화, 지주회사 규제완화, 수도권규제완화 정책 등 대기업 관련 정책을 핵심 사안으로 다루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한 중견 IT기업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는 중소 IT기업들에 대한 경영철학이 부재한 것 같다”면서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내세우면서 대기업 관련 규제만 완화하고 중소 IT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이 미흡한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취임 100일, IT정책은 어디로 갔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100일이 지났다. 광우병 쇠고기, 대운하, 민영화 등의 문제로 40일 넘게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진행돼 온 IT관련 정책은 거의 ‘실종’이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반부터 인재부족에 시달렸다. IT관련 산업 부문의 면모를 찬찬히 훑어보면 실무 브레인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IT관련 산업 정책을 추진했던 인수위 내부 인사들 중에 IT전문가가 전무했다. 때문에 방통위원회는 통신과 방송 산업의 육성보다 사업자와 산업을 규제하는 기관으로 전락했고, 지식경제부는 새로운 성장 산업에 대한 구제척인 비전조차 내놓지 못했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51명의 인사는 어떠한가. 이들 중 IT산업·과학기술·통신 관련 분야를 아는 사람을 추려보면 김동선 지식경제비서관, 송종호 중소기업비서관 2명뿐이다. 양유석 방송통신 비서관과 김창경 과학비서관도 손에 꼽히지만 각각 법학과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교수 출신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사업을 추진해본 경험이 없는 인사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과학기술 부문 출연연 통폐합으로 뒷전으로 물러났고, 방송통신 부문도 정치적 논쟁에 휩쓸려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처럼 논공행상, 정치인사, 인력부재 문제가 불거지면서 IT산업 관련 정책은 행방불명됐다. 특히 중기벤처기업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막히고, 실질적인 실무 장악도 되지 않아 어떻게 중소 IT기업들을 살려야하는지 감을 잠지 못했다.
한 중견 IT기업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에는 IT, 과학기술, 방송통신, 중소기업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없어 정책결정이 대기업 위주로 쏠렸다”면서 “앞으로 정치권 인사뿐 아니라 실무능력과 관련 산업의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을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IT정책부재, 중소 IT기업의 인력난으로 번지나
새 정부는 각종 친기업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IT업계 일선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곡소리에 가깝다. 연구개발은 고사하고, 극심한 인력난으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IT업계 종사자들은 별다른 비전도 없고, 현실마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기업에서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옮기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대기업에서 의도적으로 능력 있는 엔지니어들을 빼내갔다. 중소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는 실무능력이 뛰어나고, 팀장급 이상 업무 경력도 가지고 있어 신입보다 훨씬 낫다는 판단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소 IT기업들은 인력난 때문에 프로젝트나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창립 15주년을 맞은 중견 IT업체 C사는 올해 벌써 팀장급 전문 인력 2명이 대형 포털사과 외국계 기업 H사로 자리를 옮겨 프리랜서를 고용하지 않으면 프로젝트 수주가 어려운 상태다.
하드웨어 분야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기업 L사가 대형 하드웨어 총판 사업을 확대하면서 중견 업체에서 엔지니어들을 계속해서 뽑아가고 있다. 하드웨어 업계는 서버와 기타 장비를 판매한 후에도 설치와 유지보수 등의 서비스를 계속해서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느냐가 영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견 IT 업체 C사의 한 임원은 “대기업에서 인력 빼가는 문제가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말하기도 그렇고, 이런 기사가 계속 나오면 업계에 미칠 영향도 있어 인터뷰에 응하고 싶지 않다”면서 “대기업이 인력을 키워 사회에 배출하는 구조가 아니라 중소기업이 키워놓은 인력을 돈을 이용해 빼가는 것은 대기업의 또 다른 횡포”라고 잘라 말했다.
안양에 본사를 두고 있는 D사의 대표는 “대기업들이 신규 사업에 뛰어들거나 사업을 키울 때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을 빼가고 있다”면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보다 능력 있는 인력을 중소업체에서 채용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업무효과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동안 IT중소기업들의 침체된 분위기는 계속될 듯싶다. 정부에서 중기벤처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정책적으로 세우지 않는 한 중소 IT기업들의 인력난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IT업계 떠나는 엔지니어들 어디로 가나
중견 IT업체 E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이우진(31)씨는 대기업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연봉도 높고 안정적인데다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이유다. 그는 “아직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IT를 기반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옮길 의향은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34) 프로그래머는 몇 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귀향했다. 집안 사정도 있었지만 더 이상 IT업계에서 비전을 찾을 수 없었던 것. 김씨와 함께 일하던 한 웹 디자이너는 피규어 관련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고, 한 프로그래머는 커피숍을 열었다. 그는 “IT업계가 힘들어서 떠난 것도 있지만 좋아하는 분야여서 자연스럽게 직장을 옮긴 것”이라면서 “회사 사정이 괜찮았다면 취미로 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IT업계에서는 개발자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관리자(PM:Project Manager 혹은 PL:Project Leader)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신기술에 익숙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뒤 유능한 관리자로 성장하지 못하면 IT업계에서 계속 일할 수 없다.
이 시기가 바로 이직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을 때다. 기술보다 사람을 다스리는 통솔력과 영업능력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공학을 전공했던 사람들이 적응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관리자는 개발자와 오퍼레이터, 디자이너 등과 함께 일을 하면서 클라이언트와 업무를 조율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직장을 때려 치고 회사를 창립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보통 IT업계에서는 ‘하루살이’라고 표현하지만 예전처럼 아이디어만 믿고 창업했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10년 전만해도 자본금 없이 아이디어 하나로 덤비는 CEO들이 많았다. 아이디어만 괜찮다면 외부자본을 빌어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하지만 요즘 IT산업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IT산업의 전체 윤곽이 보이는데다 획기적인 사업들은 대기업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다. 자본과 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구멍가게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정언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실장은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고, 정부의 정책이 예전부터 대기업 위주여서 문제”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 협력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 IT기업, 전망 없어요”

  • [인터뷰] 김영훈 프로그래머

    경력 5년차의 프로그래머 김영훈(31)씨. 일하던 회사가 갑자기 도산하고, 월급조차 몇 번 떼이고 나니, 이 바닥 생리에 대해 알만큼 안다는 눈치다. 그가 중소기업을 떠나 대기업으로 이직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씨는 얼마 전 대형포탈 D사에 입사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숙고 끝에 결정을 잠시 미뤘다. 대기업에 가고 싶었지만 아직 젊고, 1~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일을 더 해보자는 심사였다.
    “20명 이하 중소 IT사업장 중에 월급 안 나오는 데가 허다해요. 그래도 이직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죠. 이 일을 그만두고 뭘 하겠어요. 경력 5년차 정도가 되면 연봉 3천만원 이상 받는데, 이직을 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되잖아요. 일종의 딜레마지요.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계속 일을 할 수밖에요.”
    김 씨는 좋은 아이템이 떠오를 때마다 창업을 꿈꿨다.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들을 모아 일을 벌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번번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좋은 아이템이 있어서 후배들을 불러봤는데 안 오더라고요. 전망이 없기 때문이지요.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고 해도 라인이 없으면 힘들어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아요. 그거 아세요. 정보공학, 컴퓨터공학 등을 전공한 대학 졸업생 80~90%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
    좋은 아이템만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시대는 지났다. 시장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자본이 확보돼야만 조금이나마 앞날을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주요 클라이언트인 대기업을 상대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괜찮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대기업에 제안을 해도, 대기업들은 그것을 기반으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버려요. 대기업의 횡포라고 할 수 있죠. 중소 IT기업 대부분은 프로젝트를 수주 받아서 일하는데, 계약 내용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꼬투리를 잡기도 해요. 대기업에는 법무팀이 있잖아요. 조그마한 실수를 해도 서류를 꼼꼼히 따져본 뒤 물어내라 그러죠.”
    그래서인지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들은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맡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다른 책임질 필요도 없고, 비교적 대우도 괜찮은 편이다.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를 중소기업에서 잡기 힘들어요. 인격적인 대우, 복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대기업에서 연봉을 많이 주면 다들 옮기죠. 돈으로 바르는데 움직이지 않기 힘들죠. 그것도 아니라면 프리랜서를 택하고요.”
    김씨는 정부의 정책이나 중소기업 상황 못지않게 개발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개발자들 중에는 외골수들이 많아요. 중소기업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도 무척 서투르죠. IT업계는 이직하기도 쉬워 회사 입장에서 개발자를 믿지 못해요. ‘돈 많이 줘서 뭐하느냐’라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죠. 중소 규모의 IT기업들이 어려운 것은 개발자들의 책임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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