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지원센터, 태생적 한계 극복하나

[월간 말]

정인미 기자 / naiad@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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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2004년 경남 밀양에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미성년자인 피해자들에게 ‘밀양물 다 흐려놨다’는 등 모욕적인 발언은 물론 공개된 장소에서 피의자 40여명을 세워놓고 가해자를 지목케 했다. 또 피해자의 실명이 기재된 문서를 유출해 결국 국가가 거액을 배상했다.
이 사건은 세월이 흘러 국민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 됐지만 아마도 피해 여중생들은 자신을 책망하면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범죄 피해로 인해 고통받고 방치된 채 살아가야 하는 범죄피해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
200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에 1명꼴로 한해 한 가지 이상의 범죄피해를 당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80% 정도는 신고를 기피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피해자의 불신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 진다.
형사사법기관은 주로 범죄의 증거를 수집하여 가해자를 벌하는 데에 역할의 중점을 두어 왔다. 피해자는 참고인 내지 수사에 필요한 객체 정도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사회적 이목이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쏠리면서 가해자의 인권보호가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들어 범죄피해자 보호와 지원에 대한 민간의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외국의 범죄피해자학 이론과 지원의 모델이 소개되었으며 그 산물로써 2006년 범죄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설립에 대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전국적으로 56개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문을 열게 되었다.

56개 센터 중 41개 검찰청 상주
이제까지 우리사회에서 범죄피해자의 고통을 함께 덜어주고 적절히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나마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 등은 여성운동의 성과로 피해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상담소들이 생겨나고 법률을 제정, 개정하면서 조건들이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많은 피해자들은 수사, 재판절차상에 있어 원할한 도움을 받거나,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인 지원들을 적절히 받고 있지 못하다. 이를 극복하고자 2003년부터 김천 구미를 시작으로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만들어졌다.
피해자지원센터는 피해자가 범죄피해로 인한 고통에서 조속히 벗어나 사회로 복귀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범죄 발생 직후부터 범죄로 인한 상처 치유시까지 피해자를 보호,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센터별 편차가 심하고 설치기관과 운영상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어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 지역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우후죽순처럼 센터가 생겨나서 아직 체계가 없고, 전체적인 네트워크 형성도 안됐다. 향후 1년이 과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원센터가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기관의 성격 즉, 관 의존형 구조다. 한국형 지원센터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자생적으로 성장한 외국의 센터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검찰의 주도적인 역할아래 짧은 기간동안 54개의 센터들이 외형적 구조를 갖췄다. ‘관변단체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지원센터는 2003년 말부터 이미 활동을 시작한 김천 피해자지원센터(민간주도형)와 대전 피해자지원센터(관주도형) 모델로 나눌 수 있다. ‘김천형’은 순수민간기관으로 설립·운영하되 검찰 등이 후견자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서 민간자원봉사활동이라는 모습에 충실하다. 그러나 예산과 인력확보의 어려움으로 자생력을 갖는데 상당기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대전형’은 검찰의 범죄예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 각 계층을 대표하는 전문가들과 연합하여 설치한 것으로 관변단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반면, 설립 및 운영이 용이하면서도 검찰 등과의 협조가 원할한 장점이 있다.
국내 56개 지원센터 중 검찰청사 내에 센터를 두고 있는 ‘대전형’지원센터가 41개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독립적인 민간지원단체를 선호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부산 지원센터 고혜경 사무국장은 “부산의 경우는 처음부터 시민운동차원에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부에 사무실이 있었다. 다른 지역의 경우는 검찰 내부에 있다보니 검찰의 영향력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정부주도하에 민간조직이 만들어지다보니 쉽게 시민운동이 자리 잡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센터들은 지역 사회 내에서 검찰이 갖고 있는 권위와 신망을 배경으로 보다 쉽게 전문위원을 위촉하고, 지역유지로부터 기부금을 받으려고 하는 의존적 자세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운영위원회 구성 및 사무국장의 선출을 통해 검찰의 하위조직의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검찰은 실제 청사 내에 피해자 지원센터를 위한 무료공간 마련 등을 통해 지원센터의 성격과 활동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국대 범죄수사법 정용기 교수는 “결속력이라는 것은 지역주민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검찰에서 독립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방범처럼 관변화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훈령에 따르면 민간위원 위촉은 관련분야 전문가 이거나 ‘범죄피해자보호·지원 분야의 비영리법인 또는 비영리민간단체, 연구기관, 언론기관 및 시민단체의 임직원으로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센터의 민간위원을 살펴보면 훈령과는 무관하게 ‘00기업대표’인 경우가 다수 눈에 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원봉사 보다는 검찰과의 네트웍 형성을 통해 직간접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지역유지형, 권력추구형 자원봉사자들이 모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지원센터 근무자는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보니, 지역민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다보니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지역위원들을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책임도 따른다”고 토로했다.
검찰청 내에 있는 센터들은 주로 형소조정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김천·구미와 부산 등 독립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센터는 경찰과의 공조를 통해 신속한 피해자 지원이 안착화되고 있다. 더불어 지역 시민단체와의 공조도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지역의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살인사건 등이 생겼을 때 경찰측에서 먼저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인정하는 가정폭력 상담소나 성폭력 상담소에 연결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각 센터의 특성을 살려서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과의 공조가 중요
피해자지원센터의 독립문제에 있어 더불어 살펴보아야 할 것은 앞서 언급한 지원센터와 경찰과의 관계다.
피해자는 범죄사건 직후 사건에 의한 충격으로 인해 냉정한 대응이 불가능하거나 수사에 협력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구급의료, 보호, 현장에서의 원조 및 정보제공, 사건현장 청소, 거처마련, 매스미디어의 접근으로부터 프라이버시 보호 등 여러가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피해자의 조기 회복을 돕기 위해서는 피해자 보호의 최접점인 경찰과의 공조가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원센터의 한 위원은 “검찰에서 주도했다는 인식이 크다보니 경찰과의 연계가 잘 안된다. 당시 수사권 독립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기에는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사건 발생의 초기 단계에 민간지원 단체가 개입하여 신속하게 피해자에 대한 지원 활동을 하는 영국이나 일본 등의 모습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는 자동위탁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피해자의 동의하에 피해자에 관한 정보를 민간지원 단체에 제공할 수 있도록 법제화 되어 있다. 또 미국에서는 경찰서내에 피해자지원단체가 상주하거나 피해자지원단체에서 파견한 직원들이 24시간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피해자 지원활동의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는 장점과 더불어 피해자 지원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다.
현재와 같이 검찰과 경찰간의 이해관계가 다소 대립되는 상황에서 경찰과의 공조체계 확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원센터가 검찰과는 독립적인 순수한 민간단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인터뷰 | 정용기 동국대 교수

    “가해자 벌금, 피해자 지원에 써야”

    피해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국대학교 범죄수사법 과정에서 피해자학 강의를 맡고 있는 정용기 교수에게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현황과 개선점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동국대 정용기 교수
    외국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피해자지원센터의 현황은 어떠하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공식적으로 활동한 것은 2007년으로 보기 때문에 아직은 초기단계다. 지원활동이 형사 조정에 집중되어 있다. 기초적 여건과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일본을 모델로 해서 검찰이라는 관 주도하에 급조됐다고 봐야 한다. 자생적으로 민간 차원에서 일어난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결속력이 떨어지고, 관에 끌려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능동적인 자세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을 준검찰적인 기관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원센터와 검찰은 전혀 별개 조직이다. 우선적으로 검찰청으로부터 독립해 순수 민간단체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센터 운영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해결방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있나.
    지원센터의 활동에는 구조금지급, 치료비, 피해의 원상회복 등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책정된 정부의 예산은 연간 10억 원 정도로 56개 ‘지원센터’의 소요예산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도 지역별로 편차가 심하다. 운영재원 마련 방안으로 가해자가 내는 벌금, 몰수금, 추징금 등의 일정 액수를 반드시 피해자 지원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좀 더 구체화하자면 벌금을 모아서 기금을 만들고 펀드를 운영할 수 있다. 물론 사용처에 대한 감사기능은 예산을 주는 국가기관에서 담당해야 한다.

    그 외에 지원센터의 안정화 방안은 무엇인가.
    지원센터는 민간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성공여부는 우수한 봉사자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하여 자원봉사자 교육프로그램과 매뉴얼의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지원센터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는 범죄피해자와 국민들이 너무 많다. 따라서 지원센터의 역할과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공영방송이나 지하철, 관공서 등을 통하여 지원센터를 널리 알려서 범죄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얻어야 할 것이다.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를 외면하고서는 지역사회가 결코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 범죄피해자의 회복을 위하여 같이 애써주고, 지원하는 성숙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진정한 선진국가가 될 수 있다.

    이미 성폭력 상담소, 가정법률상담소 등 많은 시민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피해자지원센터의 역할과도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데, 궁극적으로는 센터가 어떤 위치에 서야 한다고 보나.
    범죄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통합하는 기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의료지원이나 경제적 지원, 사법보좌, 법정모니터링 등과 같은 분야를 특성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들이 적재적소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해주는 허브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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