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자존심을 불필요하게 자극한다”

[월간 말][인터뷰] 박지원 무소속 의원

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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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무소속 의원
ⓒ 월간 말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의 대북특사였던 무소속 박지원 의원이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 남북정상회담 막전막후에 대한 보따리를 풀어놓아 주목을 받았다. 강연 당시 그는 “이제 역사적 사실을 많은 국민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공개 한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는 남북대화 비화를 공개할 것을 예고했다.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한 것도 잠시, 2002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직후 이른바 ‘대북송금특검’의 역풍으로 구속수감 돼 꼬박 5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박지원 의원의 ‘와신상담’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월간 『말』은 6월 19일 12년 만에 다시 국회 의원회관에 둥지를 튼 박 의원을 찾았다. 공언한대로 남북간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를 더 열어 보이길 원했지만 일단 한 번 물꼬를 튼 만큼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는 역시 베테랑 정치인이었다. 적어도 월간 『말』독자들을 한동안 6.15에 대한 목마름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건강은 괜찮으신가.
선거 끝나고 양쪽 눈 수술을 했다. 감옥에 있을 때는 녹내장때문에 안압하강제를 늘 먹었는데, 이 안압하강제라는게 안압은 떨어뜨리는데 부작용은 심한, 일종의 극약이다. 이걸 장기복용했더니 부작용으로 쓸개도 떼 내고 담도에 파이프를 넣는 등 지난 5월까지 총 9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다. 그러니까 사법부의 판단이라는 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지 새삼스레 느껴지더라. 재판장께서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까 녹내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병인데 왜 피고인은 재판을 잘 받을 생각안하고 자꾸 나가려고 하느냐’며 불허 기각처분을 해버리더라.
흔히 ‘왜 돈 많고 높은 사람은 거기 들어가면 아프냐’는 사회적 비난도 있지만 녹내장은 눈의 압력이 혈압하고 똑같아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쭉 올라간다. 그러다 시야가 좁아져서 종국에는 실명이 되는데 치료가 불가능하다. 나빠지면 그대로 그 상태에서 스톱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판단을 안 해주더라.

그렇게까지 고생한 줄은 몰랐다.
안압하강제가 류마티스와 결석을 가져온다. 감옥에서 나오면서 눈 수술 플러스 쓸개 떼고 담도에 파이프도 넣었다. 그래서 나는 ‘쓸개 빠진 놈’인데다가 ‘와신상담’이 되지 않는다. ‘담(膽)’자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번에 결석수술을 했기 때문에 5년 만에 노무현 찌꺼기를 내 몸에서 완전히 제거했다고 보면 맞겠다.
월간말 올해가 6.15 공동선언 발표 8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직 그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국민도 있는데 새 정부 들어서 맞는 6.15의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박지원 우리 국민만 감동한 게 아니라 전 세계가 감동을 했다.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는 모습이 전 세계로 보도되니까 전 세계가 흥분하고 박수를 보냈다. 그 후 남북관계에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 때 대북송금특검만 없었더라면, 또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남북정상회담을 빨리 해서 ‘2007. 10.4선언’이 아니고 ‘2003. 10.4선언’이었다면, ‘남북 간 얼마나 더 많은 발전을 했을까’ 생각한다, 8주년 맞이해서 감회도 있지만 반성도 되고 우울함도 있다.

최근 6.15남북정상회담의 막전막후를 공개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8년 만에 공개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노무현 정권 5년이 박지원 징역 5년이었기 때문에 사실 발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금년 이명박 정부에서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등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공개해 국민적 관심,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준수,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전환, 전체 국민이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더 강화하고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공개를 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도 막연하게나마 김정일 위원장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래도 막연하기만 하다. 가까이에서 본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김정일 위원장은 내가 교육받아 알아 온 그 김정일 위원장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에서 처음 접촉한 북측 송호경 특사 역시 뿔이 없더라. 황석영 작가가 쓴 소설에 보면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더라 이러지 않았나. 나는 북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줄 알았다. 뿔이 달린 도깨비들만 살고 있는 줄 알았지. 대게 서방 세계에서는 정치인들이 언론과 선거, 즉 대국민 접촉을 통해서 점점 세련돼 가지 않나.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은 언론접촉이나 공개적인 대국민 접촉이 없으니까 그렇게 세련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뿔도 없고 탕아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었다. 굉장히 영특하고 위트가 있고 세련됐고 말도 아주 잘했다. 그러면서도 세계정세를 굉장히 정확하게 많이 알고 있는 지도자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똑같이 말씀을 하셨고 그 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본 고이즈미 일본 총리나 페르손 스웨덴 총리,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똑같은 평가를 하더라.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처음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생한 발언과 모습이 서방세계에 알려졌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북한 주민들도 김정일 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들을 처음 봤을 것이다. 대게 보면 ‘영광이 있으라’는 한마디 정도였는데 그렇게 활동상황이 많이 알려진 건 처음이었을 듯하다.

박지원 무소속 의원
ⓒ 월간 말
김정일 위원장이 영특하고 국제정세를 소상히 알고 있다고 했는데 특별히 그렇게 느낄 만한 일화가 있는가.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이회창 총재의 방북을 초청해달라고 하니까 김 위원장이 이회창 총재에 대한 엄청난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래서 내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과 언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독재 국가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김 위원장이 ‘저는 독재 안합니다’라고 벌컥 화를 내더라. 아마도 내가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독재라는 말을 꺼낸 최초의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내가 계속 이회창 총재를 초청하라고 하니까 ‘좋습니다. 이회창 총재를 장관 선생이 초청해달라는 방법으로 만나서 연락을 하면 초청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도 ‘조선사회민주당 김영대 위원장 명의로 초청을 해서 우리 총리가 만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그게 말이 됩니까. 위원장께서 초청을 해서 위원장이 만나셔야죠’라고 했더니 ‘아니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총재시절 미국에 가면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부통령을 만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더라. 내가 속으로 ‘별 걸 다 아네’ 그랬다. 국제 의전상 맞는 말이거든. 내가 그래도 ‘그게 말이 됩니까. 미국과는 외교관계이고 우리는 민족 형제끼리의 만남인데 위원장님께서 만나셔야 합니다’라면서 계속 설득했더니 ‘그러면 좋습니다. 내가 초청을 하고 만나겠습니다’라고 확답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서방 사회에서도 야당 총재가 가면 방문국의 국가원수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김 위원장도 알고 있더라.

그게 이른바 ‘이회창 총재 방북 소동’으로 세간에 알려졌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나.
거기까지만 하자. 나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나.

김대중 대통령도 고집이 센 걸로 알고 있고 김정일 위원장의 고집도 만만치 않은 걸로 알려졌는데, 두 분의 기 싸움은 없었나.
제가 옆에서 본 것을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단, 김정일 위원장은 효(孝)사상이 투철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깍듯하게 모시고 ‘대한민국 대통령님’이라고 우리 국호를 꼭 쓰더라.
김대중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의 답방을 집요하게 주장하시니까 김 위원장이 ‘대통령님은 전라도 분이라서 그렇게 고집이 세십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우리 대통령께서 ‘나는 김해 김씨니까 경상도 사람이고, 내가 듣기로는 김 위원장이 전주 김씨니까 전라도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그렇게 고집이 세냔 말이지.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꼭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김 위원장도 답방을 꼭 하겠다고 화답했다.
나도 6월 15일 환송 오찬석상에서 노래를 한 번 불렀는데 김 위원장이 ‘앵콜’을 외치면서 박수를 쳐서 다시 노래 한 곡을 더 부르게 됐다. 내가 나가서 ‘김정일 위원장 꼭 서울 답방 하셔야 합니다. 꼭 약속하셔야 합니다. 제가 서울에서는 국회의원 한 번 하고 낙선을 했는데 재선될 수 있도록 꼭 오셔서 선거운동을 해달라’고 조크를 했더니 김 위원장이 마이크를 달라고 해선 ‘내가 꼭 서울에 가겠습니다. 가서 장관 선생이 3선, 4선을 하도록 돕겠습니다’라고 하더라. 오찬석상에서 노래 부르는 순간까지도 우리가 답방을 집요하게 요구를 했고 김정일 위원장도 꼭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후로 장쩌민 중국 주석이나 푸틴 대통령이 서울 답방을 권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다시 제 3국에서 2차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안을 해왔지만 대통령께서는 꼭 답방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판문점에서 하자까지 제안을 했는데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굉장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3년 초에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대북송금특검을 하면서 없어져버렸고, 임기 말에 하긴 했으나 정권이 교체되니까 이런 상태가 아닌가.

2003년 초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한 이유는 왜 그런가.
난 그때 감옥에 있었으니까 모른다. 김해에 가서 물어보면 잘 알겠지.

정상회담 이후엔 남북 간 물밑접촉이 활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2002년 6월 2차 서해교전이 일어나서 분위기가 급냉각 됐을 때 대북 특사를 보낸 적이 있나.
6.15정상회담 이후에는 남북 간 핫라인이 개설돼서 무수한 대화를 했다. 서해교전 당시에는 북한이 먼저 ‘밑에서 잘못 처리한 거다’라고 연락이 왔고, 최초로 서면으로 사과를 했다. 북한이 우리가 생각할 때 지나칠 정도로 자존심을 앞세우는데 먼저 그러한 것을 통보해왔고 서면 사과를 해왔다고 하면 북한의 진정성을 믿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지원 무소속 의원
ⓒ 월간 말

노무현 정부 초기 대북송금특검으로 햇볕정책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개인적으로는 특검으로 구속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는데.
대북송금특검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받는다고 하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차별화를 시도 했던 것이다. 있지도 않은 정치 비자금 관계로 나를 20년 징역을 보내려고 했지만 싸워서 무죄로 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문제에 대해선 정치적 음모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북송금특검이 잘못됐다고 하는 건 당시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인정하는 거였다. 결국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나. 당시 법무부 장관인 강금실 장관은 법무위에서도 특검 반대를 했었고, 서울 시장 후보 때도 사과를 했었다. 결과가 드러나지 않았나. 뭐가 잘못됐나. 박지원이가 20년 징역을 갔나. 결국 무죄로 나왔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대북송금특검에 대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했다고 평가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가.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과정이나 인수위 시절, 취임 후 대북 문제를 다룰 때 불필요하게 북한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쌀, 비료 지원을 북한이 요구하면 한다고 하질 않나, 통일교재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칭호를 떼지 않나, 개성공단 발언이나 선제공격 발언 등 이런 건 다 지극히 불필요한 발언이고, 북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께 왔는데 김 전 대통령이 2∼30분간 햇볕정책에 대해 설명하시니까 ‘저하고 같습니다’라면서 다섯 번이나 동의했다. 최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옥수수 5만 톤 지원이나 쌀과 비료 지원 의사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6.15, 10.4선언에 대해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개성공단 발언도 와전됐다고 정지작업 해나가는 걸 보면 이명박 대통령도 햇볕정책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또 보수는 미국과 궤를 같이 하고 있으니까 북미관계가 개선되는 걸 보면서 정부도 대북정책을 전환하리라고 생각한다. 또 그 길 밖에 없기 때문에 잘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 18일 민주당 당사를 방문했을 때 “남북문제를 이제 밀실에서 해야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른바 남북대화에서 ‘비선라인’을 없애겠다는 것인데, 대북비밀특사 역할을 맡았던 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이명박 대통령께서 그런 말씀을 한 진위는 뭔지 모르겠지만 대게 외교가 완전히 공개되면서 이뤄지는 것을 외교사에 없다고 본다. 지금 현 정부가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완전히 공개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나 저개발 국가와 국교를 하면 항상 먼저 비선 조직들을 가동한 뒤 공개적 외교관계나 상거래 관계를 만든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투명하게 하겠다는 말인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투명하게 했다. 외교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대북문제에 관해서는 그런 문제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위기 상황인데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회복하고 국정운영을 하기위해선 가장 먼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할까.
우선 잃어버린 10년을 주장하고 탓할게 아니라 변화 발전된 10년에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당면한 문제인 쇠고기 재협상, 과감한 인적 쇄신,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포기, 시급한 물가 문제 등에 대해서 정부가 매진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평가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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