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민간인 학살, 의도적 계획적 성격 있다"

[월간 말] 허상수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인터뷰=채희병 본지 기획위원 / 정리=정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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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수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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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포화는 멎었지만 그 전쟁의 상처는 5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깊이 묻혀있다. 민간인 학살 문제는 많은 부분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긴 세월을 한을 품고 살아온 유족들의 응어리를 풀기위해 동분서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원회)’. 4.3 항쟁에 대한 연구와 발표를 진행하면서 “민간인 학살과 과거청산은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는 것을 절감했다는 허상수 박사는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도 출신으로 생생한 증언들을 들었던 그에게 민간인 학살은 단순히 역사적 비극만은 아닌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범국민위원회의 시름이 깊어졌다. 지난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시작으로 출범한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가 원점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공식 석상에서 “주로 과거 정부에서 임명된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을 정비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이 대통령의 행보를 ‘역사의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체간 연대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그에게 이명박 정부 이후 과거청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일은 힘든 부분이 많은데,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내가 원래 제주도 출신이다. 88년에 40년 만에 열린 4.3 관련 토론회, 학술 세미나를 기획하고 사회를 보면서 민간인 학살과 과거청산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는 것을 절감했다. 범국민위가 2000년 9월에 만들어지는데 김동춘 위원장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물론 유족과 활동가들도 있었는데 저는 운영위원으로만 있다가 작년에 위원장을 맡았다. 범국민위원회는 전국유족협의회, 연구자, 인권사회단체 활동가 3축이 모여서 만든 기구인데 과거사 정리법이 통과된 이후 일부인사가 자기들끼리 살림을 차려 나가겠다고 해서 지난 1년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최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과거사위원회를 통폐합 한다고 하는데 전열 재정비 차원해서 다 같이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공동행동에 대한 연대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 형국이다.

-보이지 않는 갈등이 벌이진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민간학살은 유형이 굉장히 여러 가지다. 보통은 좌익으로 몰려서 죽은 양민도 있고, 일부는 보도연맹 등에 적을 뒀다가 무고하게 희생됐다. 또 전형적인 군인이나 경찰의 토벌과정에서 주위 사람과 연루됐다가 죽은 경우, 미군의 비행기나 함포 공격에 의해 희생된 경우도 있다. 이것이 유족회 안에서도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이유다. 결국 크게 보면 우익들이나 과거 정부로부터 빨갱이라고 매도당했는데 그 안에서도 서로를 질시하고 우리는 양민 또 너희는 다른 사람이라는 식의 차별같은 게 있다. 양민학살이라고 쓰지 않고 민간인 학살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쨌든 무장하지 않은 비전투원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표현인데, 일부 유족회는 양민학살이라고 쓰는 분도 있다.

-때에 따라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활동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다른 사회단체가 그렇듯 회원들의 회비로 움직이다보니 재정적 어려움이 제일 크다. 두 번 째로는 헌신적으로 일할 자원봉사자나 간사를 구하기 어렵다. 셋째로는 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는데서 오는 어려움이다. 그간 2000년부터 국민위를 만들어서 2005년 법이 제정되다보니 국민 입장에서는 ‘법도 제정되고 시행되는데 뭘 또 회비를 내고 단체지원을 하고, 집회에 참가하고 그럴 필요 있냐. 위원회에서 알아서 해줄 텐데’라는 식으로 긴장이 이완되고 제도화 늪에 빠진 측면이 있다. 위원회를 모니터 하는 일도 우리가 하는 일 중 중요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몰라서 힘들다.

-모니터 활동을 얘기했는데, 주된 범국민위 활동은 무엇인가
=최근 진실규명결정 사건에 대한 평가와 검토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정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위령사업,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 더 나아가 앞으로 과거청산 운동과 관련해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 회복적 정의다. 피해를 입혔으면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해도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현재 법은 이 부분을 거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범국민위원회에서 보기에 국가차원이든, 민간차원이든 한국 전쟁 전후에 있었던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보는가
=이제 시작이다. 민간인 학살 관련 규명은 전체규모로 보면 10%정도 밖에 안됐다. 2년 안에 다 끝내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몇 가지 어려운 점을 더 꼽자면 유족들이 기존에는 하나의 깃발과 목표 아래 움직였다면 지금은 자기 유족회 사건만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측면이 있다. 그 예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가서 담당 조사관에게 우리 것을 먼저 해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단일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동력이 소진돼 있는 것이다.

-양민학살, 민간인 학살 규모가 100만이 넘는다고 얘기 돼 왔는데, 맞는 얘기인가
=보통 항쟁이나 대참사에 대한 피해규모를 산정하기는 쉽지 않다. 광주 2천명, 제주도 8만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광주 200~300명, 제주도는 1만4천 정도다. 저희도 한국전쟁 전후 희생자 수를 100만 명으로 보고 있는데, 보도연맹 경우만 하더라도 당시 경찰관서 명부나 정황으로 보면 20~30만 명 정도는 되지 않겠나. 대부분 희생을 당했을 것이라고 보고, 어림잡아 100만 명이다.
제주 4.3 사건으로 돌아가면 정설은 2~3만 명 정도다. 확인된 것이 1만4천명. 여전히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당시 6.25 전쟁은 국제전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국제전쟁법에는 학살을 하지 않는 것을 권고하는 유엔결의가 있었다.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단 한명이라고 해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 국가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다른 전쟁과 비교해 봤을 때 규모는 어떤가
=단순히 ‘100만명이다’라고 하는 것 보다는 우리나라의 지형 또는 인구밀도에 비춰볼 때 한국전쟁 당시 돌아가신 분들이 세계사적으로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노근리 사건이 알려질 당시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가 합동조사를 하고 나서 조직적인 학살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규정했다. 그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노근리는 AP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국내에 알려지기는 『말』에서 공론화 됐다. 당사자들은 60년대부터 유족회 차원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해왔었다. 전쟁 초기 7,8월에 (미군이)상륙한 지 며칠되지 않은 부대의 공중폭격, 기총사격에 의해 희생됐다는 것이다.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대전에서 한국정부와 미군정부 관계자 회담을 통해 미군 작전지역에 출몰하는 문제인물에 대해서 공격을 해도 좋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은 미군이 민간인에게 의도적이고 계획된 공격을 했다고 본다. 그게 학살이라고 정의하면 중요한 변수가 된다. 실수로 죽은 것은 재난이지만 학살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정한 규모로 죽였느냐가 기준이다. 노근리는 부분적이지만 의도적인 것이 개입돼 있다.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학살을 했다면 한국전쟁의 성격을 뒤집을 만한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것이 아닌 것 같다. 학살이 북한에서도 일어났기 때문에 한국전의 성격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뒤바꿀 만한 것은 아니다. 단,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건 죄를 진 사람을 벌할 때는 재판 등의 공개적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적과 내통했다는 확인 없이 단지 어느 지역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우연적인 변수를 가정해서 생명을 박탈해 갔기 때문에 유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사진실화해위원회와의 관계는 어떤가
=기본적으로 화해위가 순항을 해서 진실규명이나 정부 권고도 제대로 해주길 바랬는데 섭섭한 점도 있고 문제의식도 있다. 통상적인 수준에서는 우리가 그쪽 회의 참관도 하고 우호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지난 연말에 공개질의 부분은 답변이 없었다. 위원장 취임 간담회에서도 재차 요구하고 건의했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섭섭하다. 거기도 공무원 조직이고 국가기관이다 보니 우리랑 사고방식이나 해석하는데 차이가 있다. 위원회 안에는 한나라당 출신도 있다. 이왕 하는거니까 제대로 성의있게 했으면 좋겠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통폐합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과거사 규명에 어려움도 예상되는데 이명박 정부에 촉구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중요한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정권이다.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입법 취지나 목적에 맞도록 활동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지금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가족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달라는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활동을 줄이려고 한다는데 유족들의 한에 비하면 그 정도 비용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이명박 정부도 순탄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족들이 나서서 위원회 활동을 방해하는 책임을 묻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비용으로 치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유족들의 불만과 요구를 다스릴 수 있다. 이명박 식으로 얘기하면 빨리 질서 있게 정리하고 가는 것이 우리사회 선진화의 첩경이다.

-향후 진실규명을 하는데 필요한 활동이나 계획은
=우리만 할 수는 없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나 의문사, 친일청산 등을 두루 망라한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가 있다. 지난 연초부터 ‘이명박 정부 이후 과거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워크숍을 수차례 했다. 우리나라 과거청산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에만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 내가 한 얘기 중 하나다. 사회정의나 역사적 책임을 묻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반성차원에서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새로운 모임인 ‘진실과 정의(가칭)’를 이번 달에 발족할 계획이다. 기존 과거청산운동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고 올바르고 효율적인 운동을 해야겠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어쨌든 지난 23일 대전에서 하나의 대오를 갖추고 심기일전 해보자는 유족 회의를 했다. 그래서 범국민위에서 금년에 하려는 것 중에 하나가 유족들의 권리의식, 인권 감수성 향상 위한 인권 평화아카데미 지역순회하고 있다. 연대를 통해 어렵더라도 난국을 돌파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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