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버린 이명박, 독도로 고전하는 것은 당연
한국정부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일본...'독도' 도발은 이미 예견
지난 14일 중학교 사회교과서의 새로운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독도)'를 명기했던 일본정부는 표현의 수위가 당초 알려진 것 보다 약화된 것에 대해 '한국을 향한 배려'였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 정부의 단순한 '립 서비스'에 불과해 보인다. 취임 후 '더 이상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며 일본을 상대로 쉽게 '오랜 시간 겨누어왔던 (과거사라는)총'을 내려놓았던 이명박 대통령. 일본 정부의 독도 도발은 예상된 일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 얘기 없었다'고 했다가...청와대의 말 번복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진행된 한일정상회담에서 많은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13일 교도통신과 NHK 보도에 이어 14일 요미우리신문의 보도만 보더라도 청와대의 주장처럼, 일본의 '일방적인' 주장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연이어 비슷한 보도에 대해 번복하고 있는 청와대의 모습은 그 의혹을 증폭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13일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9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새 중학교 학습지도요령의 사회과 해설서에 일본의 '영토'라고 명기하겠다는 방침을 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통신은 "일본의 독도 영유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 내용은 아직 조정중에 있다"고 말했다. 당시 교도통신 보도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짧은 비공식 환담에서 그 같은 얘기가 오가지 않았다"고 전면 부인했다.
14일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발끈했지만 이전 교도통신에 대한 반박과는 조금 달랐다. 이날 요미우리신문은 인터넷판에서 "지난 9일 한일정상회담에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도를 명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요구에도 불구, 일본 정부 내에서 '반발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한국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말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총리의 입장을 근거로 구체적인 문구 표현을 두고 조정을 계속했다"면서 도카이 기사부로 문부과학상이 마치무라 노부다카 관방장관을 만나 두 가지의 문구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본래 도카이 문부과학상은 '북방영토(러시아측 쿠릴열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영토, 영역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해를 향상시키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1안과 '여전히 독도는 한국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2안을 제시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밤 일본 정부는 두 가지 문구 중에서 1안을 최종적으로 채택, 그 문구 첫머리에 '우리나라와 한국 사이에는 독도를 두고 주장에 차이가 있다'를 포함키로 결정했다.
이에 청와대측은 "후쿠다 총리로부터 (이해를 구한다는 취지의 얘기는)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며 전날 전면 부인했던 태도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독도 문제, 前 정권에서는 달랐다
일본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이전 한국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나름의 '기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일본이 낙점됐을 때 일본 정부 내부에선 "이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에서 냉각된 양국 간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려는 목적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일본 언론들도 일제히 "한국의 차기 정권은 북한과의 관계를 최우선했던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미국, 일본 등 기존 우방국과의 관계를 중요히 여길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본은 노무현 정권 때와는 다른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독도 분쟁은 2006년에도 폭발한 바 있다. 같은 해 4월 뜬금없이 일본 해상보안청이 독도 주변 해역을 조사하겠다며 순시선을 띄웠고 이에 맞대응으로 한국 정부는 순시선의 '나포'라는 강경책까지 천명하면서 격한 갈등을 보인 바 있다. 이와 관련,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경한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우려하는 견해가 없지는 않으나, 우리에게 독도는 단순히 조그만 섬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확립을 상징하는 문제"라며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투옥, 강제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라면서 "우리는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즉 그간 '독도 문제와 과거 역사 문제는 결합시키지 않겠다'는 기조를 갖고 있던 한국 정부가 2006년을 기점으로 이 두 문제를 같은 선상에 두고, 다시는 일본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경 방침을 선언했던 것이다.
일본 정치평론가들은 아직까지도 "정치인 노무현의 사상적 입장에서 봤을 때 당시 담화는 당연했으며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진보성향의 한 평론가는 "노 대통령 담화의 의의는 일본의 정치상황에 대해 정면에서 대치하는 것을 피하고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에 따라 일본 외무성이 교묘하게 패권주의를 부활하려는 태도를 포착, 미리 일본 정부도, 국민도 국가주의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식적으로 알려줬다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크게 보면 중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수년간 일본의 '우향우' 태도를 일정부분 수용하는 모습, 즉 '조용한 외교'를 펼쳐왔다. '새역모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 매년 같은 사안이 터져도 유감 표명과 같은 태도를 취해왔을 뿐이었다. 곧 과거가 아닌 미래에 눈을 돌리려던 일반론적 자세를 취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독도 야욕은 오래된 숙제였던 것이 사실이나 2006년 독도 분쟁으로 인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펼쳐오던 한국 정부에게는 새로운 분기점으로 작용했었다.
일본의 극우적 국가주의가 대두되고 만연해지고 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시절이었던 당시, 노 대통령이 이웃나라 지도자로서의 '경고'와 '견제'를 표했던 담화는 그 자체로도 일본을 향해 겨누었던 총구와도 같았다는 해석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 '더 이상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은 마치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그 총구를 내린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목표로 '유화적인' 외교정책을 해보려는 뜻이었겠지만 이는 반대로 일본에 한국을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쉬운 나라로 생각해버리도록 만든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 얘기 없었다'고 했다가...청와대의 말 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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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해 후쿠다 야스오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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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진행된 한일정상회담에서 많은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13일 교도통신과 NHK 보도에 이어 14일 요미우리신문의 보도만 보더라도 청와대의 주장처럼, 일본의 '일방적인' 주장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연이어 비슷한 보도에 대해 번복하고 있는 청와대의 모습은 그 의혹을 증폭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13일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9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새 중학교 학습지도요령의 사회과 해설서에 일본의 '영토'라고 명기하겠다는 방침을 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통신은 "일본의 독도 영유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 내용은 아직 조정중에 있다"고 말했다. 당시 교도통신 보도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짧은 비공식 환담에서 그 같은 얘기가 오가지 않았다"고 전면 부인했다.
14일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발끈했지만 이전 교도통신에 대한 반박과는 조금 달랐다. 이날 요미우리신문은 인터넷판에서 "지난 9일 한일정상회담에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도를 명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요구에도 불구, 일본 정부 내에서 '반발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한국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말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총리의 입장을 근거로 구체적인 문구 표현을 두고 조정을 계속했다"면서 도카이 기사부로 문부과학상이 마치무라 노부다카 관방장관을 만나 두 가지의 문구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본래 도카이 문부과학상은 '북방영토(러시아측 쿠릴열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영토, 영역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해를 향상시키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1안과 '여전히 독도는 한국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2안을 제시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밤 일본 정부는 두 가지 문구 중에서 1안을 최종적으로 채택, 그 문구 첫머리에 '우리나라와 한국 사이에는 독도를 두고 주장에 차이가 있다'를 포함키로 결정했다.
이에 청와대측은 "후쿠다 총리로부터 (이해를 구한다는 취지의 얘기는)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며 전날 전면 부인했던 태도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독도 문제, 前 정권에서는 달랐다
일본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이전 한국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나름의 '기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일본이 낙점됐을 때 일본 정부 내부에선 "이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에서 냉각된 양국 간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려는 목적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일본 언론들도 일제히 "한국의 차기 정권은 북한과의 관계를 최우선했던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미국, 일본 등 기존 우방국과의 관계를 중요히 여길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본은 노무현 정권 때와는 다른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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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시마네현은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독도)의 날이란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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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시마네현
독도 분쟁은 2006년에도 폭발한 바 있다. 같은 해 4월 뜬금없이 일본 해상보안청이 독도 주변 해역을 조사하겠다며 순시선을 띄웠고 이에 맞대응으로 한국 정부는 순시선의 '나포'라는 강경책까지 천명하면서 격한 갈등을 보인 바 있다. 이와 관련,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경한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우려하는 견해가 없지는 않으나, 우리에게 독도는 단순히 조그만 섬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확립을 상징하는 문제"라며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투옥, 강제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라면서 "우리는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즉 그간 '독도 문제와 과거 역사 문제는 결합시키지 않겠다'는 기조를 갖고 있던 한국 정부가 2006년을 기점으로 이 두 문제를 같은 선상에 두고, 다시는 일본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경 방침을 선언했던 것이다.
일본 정치평론가들은 아직까지도 "정치인 노무현의 사상적 입장에서 봤을 때 당시 담화는 당연했으며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진보성향의 한 평론가는 "노 대통령 담화의 의의는 일본의 정치상황에 대해 정면에서 대치하는 것을 피하고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에 따라 일본 외무성이 교묘하게 패권주의를 부활하려는 태도를 포착, 미리 일본 정부도, 국민도 국가주의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식적으로 알려줬다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크게 보면 중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수년간 일본의 '우향우' 태도를 일정부분 수용하는 모습, 즉 '조용한 외교'를 펼쳐왔다. '새역모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 매년 같은 사안이 터져도 유감 표명과 같은 태도를 취해왔을 뿐이었다. 곧 과거가 아닌 미래에 눈을 돌리려던 일반론적 자세를 취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독도 야욕은 오래된 숙제였던 것이 사실이나 2006년 독도 분쟁으로 인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펼쳐오던 한국 정부에게는 새로운 분기점으로 작용했었다.
일본의 극우적 국가주의가 대두되고 만연해지고 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시절이었던 당시, 노 대통령이 이웃나라 지도자로서의 '경고'와 '견제'를 표했던 담화는 그 자체로도 일본을 향해 겨누었던 총구와도 같았다는 해석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 '더 이상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은 마치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그 총구를 내린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목표로 '유화적인' 외교정책을 해보려는 뜻이었겠지만 이는 반대로 일본에 한국을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쉬운 나라로 생각해버리도록 만든 꼴이 되고 말았다.
-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2008-07-15 14:18:46
- 최종편집: 2008-07-16 12: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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