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어디까지 왔냐고? 이제 시작이다!”

[인터뷰]‘촛불수배자’ 김광일 대책회의 행진팀장

정지영 기자 / jjy@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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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을 원래 알던 사람이라면 그가 최근 눈에 띄게 야위었다고 느낄 것이다. 또 이전보다 눈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도.

김광일 대책회의 행진팀장
  • '촛불수배자' 김광일 대책회의 행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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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수배자’ 김광일 대책회의 행진팀장은 “지난 15년 동안 활동했던 것보다 촛불을 든 지난 두 달 동안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말한다. ‘행진팀장’을 맡았기 때문에 초기 논란의 중심에 섰고 ‘확성기녀 논란’ ‘다함께 논란’ 등을 통해 욕도 남부럽지 않게 먹었던 그. 하지만 욕먹는다고 물러서지 않고 계속 촛불을 책임지려 했던 모습은 ‘욕’을 ‘신뢰’로 변하게 했다. ‘진정성’은 결국 통하는 법이다.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조계사 농성을 하는 요즘 가장 “괴롭다”는 김광일. 그는 “촛불이 지금 어디까지 왔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이제 시작이다”라고 답한다. 촛불운동이 시작된 것은 “광우병, 공기업.방송 민영화, 보수언론, 교육정책 등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 증오의 폭발”이었는데 “촛불의 요구사항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경제위기는 더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촛불을 끌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촛불시위를 줄이고 불매운동으로 가자’ ‘이제 생활 속으로 들어가자’는 등 촛불운동의 진로에 대한 논의에 대해 “저쪽에서 엄청난 탄압을 가하는데 후퇴하는 것은 우리 힘을 스스로 소멸시키는 데 이용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즉 형식상 다양한 방법을 쓸 수는 있지만 “시청이나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집중하는 것은 계속돼야 한다” “힘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어서 퇴진운동 못 한다는 건 문제다”

인터뷰를 진행한 18일은 조계사 농성단 생활이 시작된 지 14일째였다. ‘가장 괴로운 점’은 무엇일까. 그는 ‘행진팀장’답게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달 넘게 촛불시위 현장에서 시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때로는 욕도 먹고, 때로는 지지도 받고, 배우기도 하고 저의 경험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힘과 활력을 얻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에게 지난 두 달의 ‘배움’은 지난 15년 동안 해왔던 활동을 능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떤 ‘배움’이었기에 그랬을까. 조계사에 들어오기 전 뜨거웠던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5월 2일 처음 청계광장 시위를 했을 때다. 기존 사회운동 세력, 민중운동 세력이 아닌 조직되지 않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중심이 됐다. 시민들의 분노도 광우병뿐만 아니라 교육문제, 대운하, 사유화문제 등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도 놀라웠지만 현장에서 ‘탄핵’ 구호가 외쳐진 데서도 놀라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 날 ‘이명박 물러나라’는 구호를 제일 많이 외쳤다. 정부에 대한 분노가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책회의 행진팀장을 맡은 그에게 ‘대중의 자발성’과 사회운동을 어떻게 관계 맺느냐는 중요한 과제였다. 앞장 서는 역할을 맡다보니 초기에 ‘확성기녀 논란’ ‘방송차 논란’ ‘다함께 논란’ 등으로 욕도 남부럽지 않게 먹은 터였다.

“기존 사회운동 세력들이 대중의 자발성, 역동성을 충분히 흡수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5월 24일부터는 얽매이지 말고 거리시위를 해야 한다고 느꼈는데, 대책회의가 뒤늦은 감이 있었다. 두 번째로 5월 2일부터 ‘이명박 정부 물러나라’ 등 전면적인 거부 구호가 제기되고 쇠고기 외에 다양한 문제들까지 제기됐는데, 대책회의가 흡수하는 데 굼뜬 감이 없지 않았다.”

그는 특히 시민사회나 진보진영이 ‘이명박 퇴진’ 구호를 초반에 전면에 내걸지 못한 이유에 대해 “‘퇴진운동의 대안이 뭐냐’는 문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대안이 없어서 퇴진운동을 못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운동의 힘이 굉장히 강력할 때 얼마든지 끌어내리고 나서 그 안에서 정치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팀장은 앞서 말했듯 사회운동 세력이 대중의 자발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기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대중의 자발성을 흠뻑 받아들여 배움과 동시에 사회운동 세력도 운동의 진로에 대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그 관계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면 배우기도 하고, 주장을 내놓고 입증 받으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대형초에 불 붙이는 김광일
  • 김광일 대책회의 행진팀장이 천막농성장 앞 대형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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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시민들의 시위 방식이 ‘조직적이지 못하다’ ‘예측 불허다’ 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에 대해 김광일은 “과장됐다”고 말한다. “제가 봤던 몇몇 인터넷 카페들은 오프라인에 나왔을 때 굉장히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어떤 형태의 운동이든 조직과 지도(일방적이지 않은)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점도 제가 중요하게 배운 것이다.”

즉 “시민들이 분노나 저항을 표출하려는 것을 제어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과도한 방식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설득도 해야 한다는 점”이 현장에서 얻은 김광일의 ‘배움’이다.

“집중점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이쯤에서 ‘촛불의 앞날’로 이야기를 옮겨 보았다. 많은 이들이 ‘촛불 소강기’라는 말로 촛불을 소외시키고 촛불을 끄려고 애쓰고 있는 이 때, ‘촛불이 지금 어디쯤 왔다고 생각하나’라는 ‘우문’을 던져 보았다.

김 팀장은 “이제 시작이다. 촛불운동이 어디쯤 왔을까 문제를 살펴보려면 촛불운동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됐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광우병, 공기업.방송 민영화, 보수언론에 대한 증오, 교육정책 등 전반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우파 세력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 증오가 폭발했던 것인데 기저에는 경제위기 상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서 “문제는 경제가 더 심각한 위기로 가고 있다는 점과 촛불의 요구사항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은 계속돼야 한다. '어디쯤 와있을까'라는 질문은 '왜 계속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면 알 수 있다. 촛불의 요구가 해결되지 않았고 공세는 강화되고 있다. 규모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분노와 불안감은 늘어나고 켜켜이 쌓이고 있다”고 답했다. 촛불은 더 활활 타올라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촛불의 진로와 관련한 대책회의 내 논쟁을 보며 “‘촛불시위를 줄이고 불매운동으로 가자’는 주장이라든지 ‘국민이 승리했다. 이제 생활 속으로 들어가자’고 얘기하는 것은 매우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승헌 변호사 방문
  • 수배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김광일 대책회의 행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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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가 들어지지도 않았고, 저쪽에서는 엄청난 탄압을 가하는데 후퇴한다는 것은 우리 힘을 스스로 소멸시키는 데 이용될 뿐이다. 물론 형식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쓸 수 있지만, 시청이나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집중하는 것은 계속되어야 한다. 집중점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는 또 “6월 11일을 전후해서 몇몇 대학들이 벌인 동맹휴업이나 노동자 총파업 등 직접행동이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흐름이 촛불과 결합하는 것은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동지’이자 ‘가족’이 된 7명의 수배자

대화는 다시 조계사 농성단 안으로 돌아왔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은 특히 종로경찰서장이 조계사를 방문해 영장집행에 대한 ‘간을 보고’ 돌아간 날이었다.

‘농성은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묻자 그는 “우리는 기한이 없다. 농성단의 목표는, 비록 탄압받고 있는 수배생활에 불편한 신분이지만 촛불을 더 확대해 강력하게 만드는 데 헌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종로경찰서에서 수배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얘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조계사 스님들과 신도들의 반발로 그러지는 못했다. 계속 저울질을 하고 시도의 제스처를 취하고 결국 어느 순간에는 들이닥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 자체가 우리의 사기나 의지를 꺾을 순 없을 것이다. 우리의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두 달 가까이 촛불 현장에서 함께 했고 이제 조계사에서 24시간 함께 하는 7명의 수배자들. 이미 ‘동지’이자 ‘가족’이 되어버렸을 것 같다. 박원석 상황실장은 김 팀장에게 “수배가 체질인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눈에 띄게 야위었다’고 걱정을 하자 그는 “한의사 분들이 오셔서 진로를 하고 기력이 많이 쇠해 있다고 한다”면서 “그래도 현장에 있을 때는 잠도 잘 못자고 밥도 매끼 못 먹었는데 여기 오니까 규칙적으로 자고 세 끼를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차단된’ 채식으로만 먹으니 금세 회복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한다. 역시나 씩씩한 대답이다.

그는 "제 건강은 걱정 마시고"라고 운을 뗀 뒤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그 말 "촛불이 계속 이어지도록 현장에서 노력해 달라"는 당부로 끝인사를 했다. 살이 빠졌지만 그의 눈빛이 더 강렬해진 까닭을 알 것도 같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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